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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불교와 유학

[2] 불교와 유학

불교의 쇠퇴

신라⋅고려 시대에 전성했던 불교는 태조 이래의 억불 정책으로 쇠퇴하였다. 태종은 절의 재산을 몰수하는 등 강경한 수단으로 불교를 억압하였으나, 세종과 세조는 불교를 믿어서 한때 불교가 활기를 띠는 듯하더니 성종 때에 와서 불교는 또 다시 탄압을 받게 되었다. 조선시대 초기부터 도첩제(度牒制)를 실시하여 중이 되는 것을 억제하고 뒤에 승과(僧科)조차 폐지해 버리니 불교는 날로 시들어 갔다.

여러 왕들의 억불 정책으로 말미암아 불교는 부녀자들 사이에만 널리 믿어지고 일반 유학 중심의 귀족들로부터는 학대와 멸시를 받게 되었다.

유학의 발달

불교가 쇠퇴해 가는 반면 유학은 과거 제도의 강화와 문관의 우대로 빨리 발달되었다.

조선 시대의 유학은 주자학을 연구 대상으로 하여 사색적이며 이론적인 것에 기울어졌다. 대표적인 유학자로는 동방의 주자라고까지 불리웠던 이황(李滉; 退溪)을 들 수 있는데, 그의 학설은 일본의 유학 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한편 이이(李珥; 栗谷)는 철학뿐 아니라 정치⋅경제⋅국방 등 현실 문제까지에도 관심을 가지고 이황과는 다른 각도에서 주자학을 연구하여 새로운 학파를 이루었다.

서원의 발생

서원(書院)의 시초는 1543년 풍기 군수로 있던 주세붕(周世鵬)이 처음 세운 백운동 서원(白雲洞書院)이었다. 이 서원은 후에 이황이 군수로 있을 때에 왕으로부터 소수 서원(紹修書院)이라고 쓴 액(額)을 하사(下賜)받아 개명하고 토지도 함께 주는 버릇이 생겼다.

서원은 유학이 발달함에 따라 그 수효와 재산이 늘어나서 마치 고려의 절과 같은 느낌을 주었으며, 특히 정치에 흥미를 가지고 제각기 파벌을 만드는 일이 나타나서 뒤에는 좋지 못한 영향을 많이 주었다.

사회 생활

문반과 무반으로 이루어진 양반은 교육을 받고 관리로 등용되었으며, 부역(賦役)과 병역(兵役)의 의무까지도 면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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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의 출근
관리의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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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다음 가는 계급을 중인(中人)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의사⋅통역관⋅회계관 등 기술 직업을 세습하여 나라에 봉사하고 있었다. 상인(常人) 계급은 대부분 농사를 지었으나 그 밖에 공업⋅상업 등에 종사한 사람들도 있었다. 천인 계급은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없을 뿐 아니라, 여행 및 거주의 자유도 없었고 무거운 의무만을 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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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복장
조선 시대의 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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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업품을 만드는 공장(工匠)들은 그 직업을 세습하고 있었으며, 사회적 지위는 공천(公賤)이건 양민(良民)이건 간에 천한 계급에 속하였다. 상업은 아직도 자급 자족이었고 지방에는 보부상(褓負商)이라는 행상이 왕래하였다. 서울에는 일찍부터 육의전(六矣廛)이 있어 궁중의 물건을 공급하고 있었다.

《주요 용어》

도첩제, 백운동 서원, 육의전, 양반, 중인, 상노

◇ 연습 문제 ◇

1. 세종 대왕 때에 발명된 기계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2. 불교를 어째서 탄압하였을까?

3. 조선 시대에는 어떤 계급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무슨 일을 하였는가를 말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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