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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본의 생활

바쿠후 정치의 시작

7세기 경에 고대 국가(古代國家)를 형성한 일본은 타이카 개신(大化改新)이라는 제도의 개편으로 사회를 안정시키고 찬란한 문화를 이루었다. 이것은 중국의 당(唐) 문화와 우리 나라 삼국의 문화에 자극되어 대륙 문화를 받아 들여 이루어진 것이다.

이로부터 약 300년 동안, 일본은 동북 지방의 아이누 족을 정벌하여 국토를 통일하고 평화스러운 시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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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누 족
아이누 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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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에 이르자 차츰 권력을 쥔 사람들이 장원을 만들고 정치를 좌우하기 시작하더니 미나모토(源)⋅타이라(平)의 두 집안이 가장 강해져서 서로 다투었다. 이들은 사병(私兵)을 기르고 서로 싸우다가 미나모토가 승리하여 카마쿠라에 바쿠후(幕府)를 세우고 무인 정치를 폈다(1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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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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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정치

바쿠후 정치는 일종의 무인 정치로서 군대를 많이 기르고 토지를 많이 가진 사람이 실권을 잡는 봉건적 통치 방법이었다.

카마쿠라 바쿠후는 다시 호오죠오(北條)가 세력을 잡고, 몽고의 두 차례의 공격을 요행히 막아 내었으나, 그 후 쇠약해져서 아시카가(足利)의 무로마치(室町) 바쿠후가 일어났다.

16세기 중엽부터 일본 내부는 다시 분열되어 토요토미(豊臣) 등이 한때 세력을 잡고 우리 나라에까지 쳐들어왔으나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에토(江戶) 바쿠후를 열었다.

에토 바쿠후에서부터 일본 사회는 강력한 봉건 제도와 엄격한 신분 제도에 의한 주종 관계(主從關係)가 성립되었다.

일본은 19세기 말 개화 운동이 일어나기까지 쇄국주의를 쓰고, 나라 안의 발전에만 힘써 왔기 때문에 섬 나라 근성이 생겨났으나 외국의 침략은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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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주의 성곽
일본 영주의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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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용어》

대화 개신, 카마쿠라 바쿠후, 에토 바쿠후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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