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조 시대의 정치
영⋅정조 시대에 이르자 당쟁으로 어지러워진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 탕평책을 쓰는 한편, 과단성 있는 정책으로 조선 시대 후기의 발전을 가져 왔다.
영조는 악형을 폐지하고 사형(私刑)을 금지하는 등 인권을 옹호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한편, 국민의 경제 생활의 안정과 향상을 위하여 사치한 생활을 금하고, 사회의 미풍 양속을 권장하였으며, 농업을 장려하였다.
편찬 사업에도 힘을 써서 속대전(續大典)⋅동국 문헌 비고(東國文獻備考) 등을 편찬하게 하였다.
정조(正祖)도 선왕의 뜻을 이어 선정을 베풀었다. 궁중에 일종의 도서관인 규장각(奎章閣)을 설치하고 학자들로 하여금 학문을 연구케 하는 한편 활자를 개량하여 여러 가지 글씨체를 만들었다.
산업과 교역의 발달
이 시대에는 외국 문물과의 접촉이 잦았고, 실학도 발달하였다. 물자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산업도 발달하였다. 황무지의 개간, 저수지의 수축, 조림 사업 및 대용 식물의 재배 등도 활발하였다. 일본에서 들여온 고구마와 청 나라에서 수입한 감자는 흉년에 대비하는 식량으로 심어졌고, 자연삼을 인공적으로 재배하는 인삼 재배업도 널리 보급되었다.
상업은 그리 발달하지 못하였으나, 영조 때에는 전국에 약 1,064개소에 달하는 정기 시장이 서서 국내 상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보부상(褓負商)들이 각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교환시켜 주었다. 한편 국제 간의 교역은 외국과의 사신 교환으로 이루어지는 무역이 있었을 정도였는데, 이 때부터 국경 지역에 호시장(互市場)을 열어 정기적으로 무역을 했고, 부산 등 남쪽의 항구에서는 일본과의 교역도 성하였다.
《주요 용어》
규장각, 동국 문헌 비고, 호시장, 보부상, 인삼 재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