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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문예의 발전과 천주교의 전래

[2] 문예의 발전과 천주교의 전래

학술과 문예의 발달

조선 시대 중기로부터 공리 공론에 치우쳐 연구되어 온 성리학은 청 나라에서 발전된 고증학(考證學)과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받은 일부 학자들의 실학 운동의 영향으로 많은 실학자가 쏟아져 나왔다. 안정복(安鼎福)⋅이중환(李重煥)⋅정약용(丁若鏞)⋅신경준(申景濬)⋅유득공(柳得恭) 등은 대표적인 학자들이었으며, 박지원(朴趾源)과 박제가(朴齊家) 등은 북학파(北學派)로 유명하다.

이 무렵에 특히 발달한 학문은 역사와 지리였는데, 김정호(金正浩)는 청구도(靑丘圖)와 대동 여지도(大東輿地圖)를 만들고, 역사 지리의 연구로 금석학(金石學)이 새로 일어났다. 김정희(秋史)는 금석학뿐 아니라, 서가(書家)로서도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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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 지도(서울 근방)
대동여 지도(서울 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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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도 크게 발달하여 서민 문학과 여류 문학이 성했다. 이러한 문학은 김천택(金天澤)의 청구 영언(靑丘永言), 김수장(金壽長)의 해동 가요(海東歌謠)에 의해서 집대성되었다. 여류 작가로서는 허난설헌(許蘭雪軒)과 황진이(黃眞伊)가 뛰어났다. 춘향전(春香傳)은 작가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당시의 사회상을 잘 반영한 우수 작품이다.

미술과 공예

실학 운동의 영향으로 검소한 생활이 장려됨에 따라 미술 공예 활동이 부진하였으나, 유한 계급에 의한 서화(書畵)와 생활에 쓰이는 물건을 만들어야겠다는 풍조가 생겨 목기와 자기(磁器) 공업이 발달하였다.

이 시대의 그림은 서민 생활과 관계 있는 것을 대상으로 했다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 화가로는 단원 김홍도(金弘道)⋅혜원 신윤복(申潤福)⋅정선(鄭歚)⋅장승업(張承業) 등이 유명하며, 글씨를 잘 쓴 사람으로서 김정희를 비롯하여 안평 대군(安平大君)⋅김구(金絿)⋅양사언(楊士彦)⋅한호(韓濩) 등 이른바 4대 서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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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의 그림
혜원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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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견도(작자 미상)
투견도(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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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품으로서는 백자기(白磁器)가 유명했는데, 우아하고 정결하며 자유로운 표현 방법을 썼다.

천주교의 전래와 그 박해

청 나라를 왕래한 사신들이 들여온 천주 실의와 같은 책을 통하여 호란 이후에 알려진 천주교는 처음에 이익⋅안정복 등의 학자들이 학문적으로 연구하였으며, 후에는 정권을 잃은 남인들 사이에서 신앙 활동이 움트기 시작하더니, 이승훈이 뻬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뒤부터 천주교는 차츰 민간에 퍼졌다. 그러나 재래의 풍습과 맞지 않아 사교로 몰려 정조 10년에 금지령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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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교회
초기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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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는 점점 자라나더니, 정조 때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가 들어온 후 천주교의 세력이 늘어 가자 조정의 박해가 심해져서 이승훈⋅황사영(黃嗣永) 등 많은 교도와 그들 가족이 사형되었다.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1801년의 신유 사옥(辛酉邪獄)과 1839년에 있었던 기해 사옥(己亥邪獄)은 천주교를 박해한 큰 사건이었다. 그래도 천추교의 교세가 늘어 가므로 조정에서는 오가 작통법(五家作統法)을 써서 천주교의 전파를 철저히 금했다. 그러나 교세는 오히려 자라났으며, 한국인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金大建)이 나와 포교하매 더욱 활발해졌다. 그 후 철종 때의 온건한 정책 밑에서 큰 발전을 거두었다.

《주요 용어》

실학파, 북학파, 금석학, 신유 사옥, 오가 작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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