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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원 6. 세계의 움직임과 우리 나라의 근대화
  • Ⅲ. 우리 나라의 근대화를 위한 노력
  • [2] 열강의 침입

[2] 열강의 침입

러시아의 접근

러시아는 우리 나라와 통상 조약을 맺은 다음, 베베르를 비롯한 외교 사신을 서울에 보내어 교묘한 수단으로 친교를 맺으며 민비와 통하여 세력을 펴고자 노력하였다.

청과 일본이 지나치게 조선의 내정(內政)에 간섭하므로, 제3세력이 필요하다고 느낀 고종과 민비는 차차 러시아와 가까이 하여 정부는 경흥에 국경을 터놓고 통상하였다. 러시아는 원산과 절영도에 저탄소(貯炭所)를 두려 하였으나, 청은 위안스카이(袁世凱)를 서울에 보내어 이를 방해하였다.

거문도 사건

세계 각지에서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었던 영국은 조선에 러시아의 세력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1885년에 거문도(巨文島)를 불법으로 점령하고 병사를 짓고 포대를 쌓았다.

우리 나라는 여러 번 영국에 항의하였고 또 다른 여러 나라도 이에 간섭하게 되니, 청이 중간에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여 영국 함대는 물러 갔다.

이 때부터 한국은 청⋅일본⋅러시아 세 나라의 경쟁터가 되었다. 개국을 한 지 10년도 못 되어 이러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간도 문제

세종 대왕 이후 우리 나라와 청은 백두산을 경계로 국경을 삼아 왔는데, 숙종 때에 세워진(1712) 정계비(定界碑)에는 간도 지방이 우리 영토로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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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비 부근
정계비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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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지방에는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청은 갑자기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므로 정부에서는 어윤중을 보내어 비석을 증거로 간도 지방이 우리 영토임을 내세워 양보치 않았다. 그러나 일본은 노일 전쟁 후 우리 나라 외교권을 빼앗고, 남만주 철도 부설권과 바꾸어 버렸으므로 우리의 영토는 줄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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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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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곡령

일본은 정치적 진출과 더불어 경제적으로도 우리 나라를 뺏으려고 꾸준히 노력하였다.

그들은 우리 나라의 농촌으로 파고 들어와서 면제품⋅솥⋅남비⋅농기구⋅석유 등을 팔고, 그 대신 쌀을 받아 들였고, 또 춘궁기에는 돈을 빌려 주고 비싼 이자를 붙여서 가을에 쌀로 받았다.

일본은 조선을 식량 공급지와 상품 시장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이에 대한 반항으로 함경도 강사 조병식은 1889년에 방곡령을 내려 농민으로 하여금 쌀을 일본에 팔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당황한 일본의 항의로 결국은 이것을 해제하여 버렸다.

《주요 용어》

거문도 사건, 러시아의 남하 정책, 정계비, 방곡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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