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2차 교육과정
  • 중학교 국사 2차
  • 단원 6. 세계의 움직임과 우리 나라의 근대화
  • Ⅳ. 대한 제국과 민족의 수난
  • [2] 민족의 자각과 새 문화

[2] 민족의 자각과 새 문화

민족의 자각

나라는 기울어 가고 일본의 야심이 점점 노골화되자 지식 계급들은 민족을 구원하려는 운동을 일으켰다.

개화된 이후 기독교가 들어와 자유주의 사상을 불어 넣고, 학교와 의료 기관을 세우는 등 민중을 깨우쳐 준 바가 컸다. 독립 협회 이후에도 이준⋅양한목 등이 헌정 연구회를 만들었고, 장지연⋅윤효정 등은 대한 자강회(大韓自疆會)를 만들어 국가의 자주 독립을 주장하였다.

언론 기관은 독립 협회의 독립 신문 발간(1896)에 이어 황성 신문⋅대한 매일 신보 등이 나와 일본의 정책을 맹렬히 비난하였다.

확대보기
독립 신문
독립 신문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황성 신문
황성 신문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대한 매일 신보
대한 매일 신보
팝업창 닫기

종교와 교육

동학의 뒤를 이은 손병희(孫秉熙)는 매국의 무리인 이용구와 손을 끊고 천도교를 일으켰고, 한편 나철(羅喆)은 민족의 전통을 살리고자 단군을 모시는 대종교(大倧敎)를 세웠다.

확대보기
천도교 본부
천도교 본부
팝업창 닫기

천주교는 개화 운동 이후 차차 교세를 떨치어 여러 곳에 교회를 세웠고, 기독교도 여러 파가 들어와 장로교⋅감리교⋅성결교⋅안식교 등의 교회를 세웠다.

갑오 경장 이후 소위 신학문을 가르치는 교육 제도가 냐타나 소학교⋅중학교⋅사범 학교⋅외국어 학교가 세워졌지만, 사립 학교가 오히려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움직였다. 배재(培栽)⋅경신(敬新) 등 학원을 비롯하여 여학교로서 이화(梨花)⋅정신(貞信) 등이 세워졌으며, 광무(光武) 10년 간에 무려 20여 학교가 생겨나서, 사립 학교는 민족 정신을 기르는 본거지로서 많은 인재를 길러 내었다. 서북 학회(西北學會)⋅기호 학회(畿湖學會)⋅흥사단(興士團) 등의 여러 단체가 일어나 학술 연구지도 여러 가지가 발간되었고, 여러 모로 민족 정신을 고취시켰다.

확대보기
초기의 소학교(지금의 서울 수송 국민 학교)
초기의 소학교(지금의 서울 수송 국민 학교)
팝업창 닫기

한편 어문 일치(語文一致)의 새 문학 운동이 이인직(李人稙)⋅이해조(李海朝) 등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주시경(周時經)의 국어학 연구와 신채호(申采浩)의 역사학 연구는 학술 방면뿐 아니라 민족 정신을 깨우쳐 준 데 이바지한 바가 컸다.

국채 보상 운동

민족의 자각은 국채로서 보상하자는 범 국민 운동이 나타났다. 이것은 일본에서 빌어다 쓴 돈을 우리가 갚고 일본의 세력을 몰아 내자는 자주 독립 운동이다. 국민들이 담배를 끊고 돈을 모아 보자는 뜻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대구⋅동래 지방에서 일어나더니 서울에서도 활발하여지고, 온 국민은 다투어 돈이나 금⋅은⋅보화를 내어 놓았다. 이것은 결과를 보지 못하고 일본의 방해로 실패하였지만, 민족의 의사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일본에게 알려 준 뜻깊은 일이었다.

《주요 용어》

헌정 연구회, 대한 자강회, 황성 신문, 장로교, 감리교, 천도교, 대종교, 서북 학회, 기호 학회, 국채 보상 운동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