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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원 7.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우리 나라
  • Ⅱ. 제2차 세계 대전과 민족의 해방
  • [1] 전체주의의 일어남

[1] 전체주의의 일어남

베르사이유 체제의 붕괴

1929년 경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공황의 영향이 전 세계에 미치게 되자 유럽과 세계 여러 나라들은 온갖 노력을 경제력에 기울였다. 미국은 뉴우딜 정책으로 위험에서 벗어나고, 영국은 옷타와 회의에서 식민지와의 블록 경제를 이루어 공황을 이겨냈다.

그러나, 독일⋅이탈리아⋅일본 등은 식민지도 적고 실업자 대책도 없었으므로 최후 수단을 써서 경제 공황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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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인플레이션(지갑을 대신하는 돈 보따리)
독일의 인플레이션(지갑을 대신하는 돈 보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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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는 이러한 막다른 골목에서 생겨난 것인데, 이로부터 베르사이유 체제를 그대로 이끌고 나가려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들 사이에 대립이 일어나게 되었다. 국제 연맹은 유명 무실해지고 각국은 다투어 군비를 확장시키니 세계에는 또 다시 전운(戰雲)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전체주의는 독재 정치를 등에 업고 나타나는 것이므로 전체의 목적을 위하여 개인은 희생되었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제도로서 미국과 영국 등 여러 민주 국가들이 걱정하는 바가 되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독재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의 나찌당(국수 사회당)은, 패전과 경제 공황으로 절망에 빠진 틈을 타서 1933년에 정권을 잡고 독재 정치를 폈다. 미국의 원조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은 적고 생활난에 허덕이고 있는 독일 국민에게 나찌당은 국수주의와 경제 부흥을 내걸고 공산당과 유다인을 배척하는 한편, 밖으로 베르사이유 체제와 배상금 지불을 거부하여 국민의 인기를 끌었다. 히틀러는 얼마 안 가서 바이말 헌법을 중지시키고 언론과 출판을 통제하여 독재 정치를 한 뒤 국민 투표에 의해서 자아르 지방을 찾고, 영국의 블럭 경제와 대항하여 자급 자족의 경계 정책을 밀고 나갔다. 한편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당은 베르사이유 체제를 벗어나서 경제 발전을 꾀하기를 원하는 국민의 열망을 이용하여 정권을 잡고 독재 정치를 폈다. 뭇솔리니가 통령(統領)이 되면서부터 산업을 합리화하고, 생산을 늘려 경제를 안정시키는 한편 식민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이디오피아를 침략하였다(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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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오피아의 군인들
이디오피아의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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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의 국제 연맹은 이탈리아의 이러한 침략 행위를 막을 수 없을 만큼 무력하였다.

이로부터 독재자 히틀러와 뭇솔리니는 국제 연맹을 무시하고 군비를 확장하여 서로 동맹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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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뭇솔리니
히틀러와 뭇솔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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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체주의와 대륙 침략

대한 제국을 삼키고 다시 중국 대륙으로 세력을 뻗치려던 일본은 섬유 공업을 비롯한 경공업을 일으켜 많은 상품을 해외로 수출하였다. 그러나 경제 공황을 맞은 일본은 외국 무역으로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서 보다 많은 식민지가 필요하였다. 식민지 획득에 필요한 무력을 기르기 위하여 일본은 전체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치안 유지법을 만들어 언론을 통제하였다. 일본의 전체주의는 군부 독재의 행태로 나타났다.

군축 회의 결과에 불만을 품은 일본은 국제 연맹에서 탈퇴하고 전쟁 준비에 더욱 힘을 기울였다. 만주를 쉽사리 점령하고 괴뢰 정권을 세운 후, 중국 대륙으로 침략의 손을 뻗쳤다. 국민 정부가 공산당 토벌에 열중하고 있는 틈을 타서 일본은 중국과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군은 화뻬이 지방과 난징⋅우한⋅꽝뚱 등지를 점령하고 중국 대륙을 지배할 태세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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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륙 침략
일본의 대륙 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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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용어》

전체주의, 자아르 지방, 나찌당, 파시스트당, 일본의 군국주의, 군축 회의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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