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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제2차 세계 대전의 일어남

[2] 제2차 세계 대전의 일어남

추축국의 성립

독일과 일본이 국제 연맹을 탈퇴(1933)하게 되자 베르사이유 체제는 완전히 무너지고 두 나라는 고립하게 되었다. 독일의 군비는 1935년 경에 이르러 5배로 늘어나서 세계 제일의 강국이 되었다. 고립을 두려워한 두 나라는 1936년에 방공 협정(防共協定)을 맺고 이듬해에는 이탈리아를 포함시켜 독⋅일⋅이 3국의 결합이 성립되었다.

이로부터 세 나라는 적극적인 공세로 나와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합치고(1938), 체코슬로바키아를 손에 넣은 후, 발트 해안으로 진출하여 폴란드를 위협하였다. 이탈리아는 알바니아를 합병하고(1939), 아프리카 북부의 튀니지까지 세력을 뻗쳤다.

만주를 지배하고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화뻬이 지방으로부터 화중 지방으로 전쟁 지역을 넓혀 갔으나 미국과 영국의 원조를 받은 국민 정부는 국토의 점령과 혼란 등 여러 가지 악조건을 무릅쓰고 충칭(重慶)으로 들어가 일본군에 대항하였다.

자유 국가의 단결

추축국의 침략 행위에 위협을 느낀 프랑스와 영국은 폴란드 상호 원조 조약을 체결하고(1938), 소련과도 이듬해에 동맹을 맺음으로써 영국⋅프랑스⋅소련 3국의 결합을 보게 되었다.

미국은 제1차 세계 대전 때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민주주의의 옹호를 부르짖고, 일본의 침략 행위를 규탄하며 무역을 줄이고 경제적으로 압박을 가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폴란드 지배의 야망을 품은 독일은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은 다음 1939년 9월에 폴란드에 진격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폴란드의 침략을 계기로 영국과 프랑스는 즉시로 독일에 선전을 포고하였다. 영국⋅프랑스 두 나라에 배신한 소련은 독일과 함께 폴란드를 점령하여 분할하고 발트해 연안과 핀란드로 진출하였고, 독일은 노르웨이를 손에 넣었다.

이듬해 독일은 프랑스에 공격을 가하기 위하여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짓밟고 한 달만에 파리를 점령하였다. 이 때 남쪽에서 이탈리아도 공격하여 오므로 프랑스는 휴전 조약을 맺고 드골 일파는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처어칠을 수상으로 내각을 정비한 영국은 독일의 공습에 굴하지 않고 베를린을 폭격하면서 미국과 긴밀한 연락을 맺고 있었다.

서부 전선에서 우세를 보인 독일은 1941년 소련을 공격하여 동쪽 깊숙이 들어갔으나, 소련은 미국의 군비 원조를 받으면서부터 독일군을 완강하게 막았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우세함에 힘을 얻은 일본은 1941년 12월에 진주만(眞珠灣)을 급습하여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격침시키고, 영국과 미국에 선전하니 전쟁은 세계적으로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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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진주만 공격
일본의 진주만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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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일본군이 우세하여 필리핀⋅인도지나 반도를 점령하고 인도 국경까지 이르는 한편 태평양의 여러 섬을 점령하여 솔로먼 제도에까지 세력을 뻗쳤으나, 맥아더를 사령관으로 한 미군의 반격이 가해지자 전세는 날로 일본에 불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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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도
제2차 세계 대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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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독⋅일의 항복

영국은 독일이 프랑스에서 우세를 보일 때 아프리카 작전에 주력하여 미군과 함께 튀니지를 공격하고 독일과 이탈리아를 식민지로부터 고립시켰다.

1943년에는 아이젠하워가 지휘하는 미군이 시칠리아 섬을 공격하고 이탈리아 본토에 상륙할 기세를 보이자 뭇솔리니는 물러나고 이탈리아는 항복하고 말았다. 8월에는 영국의 처어칠 수상과 미국의 루우스벨트 대통령이 대서양에서 회담하고 대서양 헌장을 발표하였으며, 11월에는 미⋅영⋅중의 세 거두가 모여 카이로 회담을 열고 일본에 대한 전후 처리와 한국의 독립을 결의하였다.

다시 12월에는 미 영⋅소 3국의 수뇌가 얄타에 모여 독일이 항복한 뒤의 문제를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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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타 회담(오른쪽으로부터 처어칠⋅루우스벨트⋅스탈린)
얄타 회담(오른쪽으로부터 처어칠⋅루우스벨트⋅스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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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6월 연합군은 노르만디 상륙 작전에 성공하여 프랑스로 진격하는 한편 지중해로부터 북진하였고, 소련도 동부 전선의 방어를 뚫고 독일로 진격해 갔다.

이와 같이 완전히 포위당한 독일은 1945년 5월에 항복하고 일본만이 남았다.

독일이 항복한 뒤에 연합국측은 포츠담 회담을 열고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을 촉구하였다.

한편 태평양 전선의 미군은 이오오 섬과 오키나와를 점령한 후 차차 공격에 성공함으로써 일본은 자기네 본토를 공격받을 상태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드디어 미국은 8월에 들어가서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하였고, 북쪽에서는 소련이 만주를 공격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마침내 무조건 항복을 하였고, 4년 동안에 걸친 제2차 세계 대전도 끝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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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후의 유럽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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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오 섬 점령
이오오 섬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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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항복 조인서에 사인하는 맥아더
일본의 항복 조인서에 사인하는 맥아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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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용어》

중일 전쟁, 군국주의, 추축국, 연합국, 대서양 헌장, 얄타 회담, 포츠담 선언, 카이로 회담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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