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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수⋅당과의 전쟁과 삼국 통일

2. 수⋅당과의 전쟁과 삼국 통일

〔학습 개요〕

오랜 동안 분열되었던 중국이 수⋅당의 통일 국가를 이루게 되자, 우리 나라에 침략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고구려는 중국의 침략을 잘 막아 세계의 전사상 빛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살수 대첩과 안시성 승리가 그것이다.

한편, 신라는 한강 유역에 진출한 이래 백제와 고구려의 압력을 받자, 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하여 당과 제휴하게 되었다. 이 때, 당도 고구려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신라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나⋅당 연합군이 결성되어 백제와 고구려를 치니, 두 나라는 무너지고 말았다.

그 뒤 신라는, 우리 땅을 지배하려는 당의 야심을 무력으로 꺾고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학습 문제

1. 고구려는 수⋅당의 침략을 어떻게 극복하고 우리의 영토를 어떻게 수호하였을까?

2. 신라와 당은 어찌하여 연합하였으며, 나⋅당 연합이 우리 역사에 끼친 영향은 어떠한 것일까?

3. 백제와 고구려는 어찌하여 나라를 그르치게 되었을까?

4. 신라는 우리 나라에 야심을 가진 당의 세력을 어떻게 몰아 내고 삼국 통일을 완수하였을까?

수의 침략과 살수 대첩

6세기 후반에 이르러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령하자, 고구려와 백제는 신라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하게 되었다. 이 무렵, 오랜 동안 분열되었던 중국은 수에 의해 통일되었다.

수가 중국을 통일하자, 위협을 느낀 고구려는 군비를 갖추고 군량미를 저축하는 등 이에 대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몽고 지방의 돌궐과 동맹을 꾀하는 한편, 말갈족을 이끌고 요서 지역을 먼저 공격하였다. 이에, 수의 문제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니, 고구려는 초전에 이를 대패시켰다.

그 후, 수의 양제는 1백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해 왔다. 수의 육군은 고구려의 국경 요새지인 요동성을 공격하고, 해군은 대동강으로 침공하여 왔으나, 고구려는 이를 잘 막았으므로, 모두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에, 수 양제는 약 30만 명의 별동대를 뽑아 평양성을 침공하여 왔다.

이 때, 을지문덕 장군은 수의 군대를 평양성 근처까지 끌어들여 포위, 공격하니, 수의 군대는 크게 패하여 후퇴하다가 살수(청천강)에서 고구려 군사에게 거의 전멸당하고, 살아 돌아간 자는 2천 7백 명에 불과하였다(612). 이것이 세계 전사에 빛나는 살수 대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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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수 전쟁(민족 기록화)
고구려⋅수 전쟁(민족 기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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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도 몇 차례 고구려를 공격하여 국력을 소비한 수는 내란까지 겹쳐 곧 멸망하고 말았다.

당의 침략과 안시성의 승리

수의 뒤를 이어 중국을 지배하게 된 당은 한때 고구려와 화친하였으나, 국력을 키워 고구려 침략의 기회를 노렸다. 이 때, 연개소문이 정권을 잡고 있던 고구려는 국경 지대에 천리 장성을 쌓아 이에 대비하였다.

한편, 백제와 고구려의 침략을 자주 받아 고립된 신라는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당과 외교 관계를 굳게 하였다. 정복 전쟁을 계속하던 당 태종은 이러한 국제 관계를 구실로 삼아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당군은 신무기를 이용하여 요동성을 함락시키는 등 한때 기세를 올렸으나, 수 개월 동안 치열하게 계속된 안시성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물러났다(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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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당 전쟁(민족 기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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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당은 몇 차례나 고구려를 침략해 왔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이것은 고구려 국민들이 일치 단결하여 국난을 극복한 빛나는 승리로서, 우리 민족사상 특기할 만한 일이다.

백제의 무너짐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령하자, 고구려와 백제는 서로 동맹하여 신라를 자주 공격하였다. 곤경에 빠진 신라는 김유신 등으로 이를 막게 하는 한편, 당과 군사적 동맹 관계를 맺었다. 여러 번 고구려 정벌에 실패한 당은 방법을 바꾸어, 신라가 삼국 통일을 강렬하게 원하고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신라를 돕는 체하면서 백제, 고구려를 차례로 치려고 하였다.

한편, 백제의 의자왕은 신라에 대한 군사 작전을 자주 일으켜 부질없이 국력을 소모하였다.

이 틈을 타서,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과 소정방이 거느린 당군이 연합하여 백제를 공격하였다. 계백 장군이 이끄는 백제의 결사대는 신라군을 맞아 황산벌에서 용감히 싸웠으나 실패하였다. 이리하여, 나⋅당 연합군에게 사비성이 함락되었다(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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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성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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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무너짐

백제를 무너뜨린 신라와 당은, 그 이듬해에 고구려를 쓰러뜨리기 위해 평양성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한편, 고구려는 수⋅당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기도 하였으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력이 소모되어 차차 나라가 기울어져 갔다. 이러한 가운데 연개소문이 죽자, 정권의 계승을 둘러싸고 지도층이 분열되어 민중들의 사기가 떨어졌다.

이 틈을 타 신라와 당은 남과 북에서 많은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고구려는 평양성을 굳게 지키며 1년간 항전하였으나, 끝내 함락되고 말았다(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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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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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당군 축출

나⋅당 연합군에게 무너진 백제와 고구려의 옛 영토에서는 부흥 운동이 줄기차게 일어났다.

옛 백제 지역에서는 복신, 도침, 흑치상지와 왕자 풍이 부흥 운동에 앞장 서 한때 그 세력이 대단하였으나, 지도자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끝내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옛 고구려 지역에서도 검모잠, 안승 등이 중심이 되어 여러 곳에서 부흥 운동을 일으켰으나, 안승이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에 투항하는 등의 내분이 일어났다.

이 때,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무너뜨린 당은 신라마저 그들의 지배하에 넣으려고 꾀하였다. 이를 눈치챈 신라는 이 땅에서 당군을 몰아 내는 싸움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수 년 간에 걸쳐 신라와 당은 혈투를 거듭하였다.

신라는 고구려 부흥 운동군을 도와 당군의 공격을 막는 한편, 백제의 옛 땅에 주둔하고 있는 당군을 무찔렀다. 당은 많은 군대를 파견하여, 한강, 임진강 유역에서 신라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신라는 당의 육군 20만 명을 의정부 부근에서 거의 섬멸하였고, 이어서 금강 입구에서 당의 해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이리하여, 신라는 마침내 당군을 이 땅에서 축출하고, 숙원의 삼국 통일을 이루었다(676).

학습 정리

1. 중국을 통일한 수의 침략을 받은 고구려는 살수 대첩과 같은 큰 승리를 거두어 나라를 지켰다.

2. 당은 복잡한 삼국 관계를 구실로 고구려에 침입하였으나, 안시성에서 대패하였다.

3. 신라와 당의 이해 관계가 일치되어 나⋅당 연합군이 결성되었고, 이러한 국제 관계 속에서 백제, 고구려가 무너지게 되었다.

4. 신라는 우리 나라에 야심을 가진 당과 싸워 마침내 그 세력을 축출하고, 삼국 통일을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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