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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Ⅰ. 우리 나라 역사의 여명
  • 1. 선사 시대의 생활

1. 선사 시대의 생활

〔학습 개요〕

우리 조상들은 만주와 요서 지방 및 한반도를 중심으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의 각 문화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 구석기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50만 년 이전에 이루어졌으며, 신석기 시대는 약 6천 년 전에 이루어졌다.

신석기인들은 주로 물가에 살면서 어로와 수렵, 채집 경제 생활을 하였으며, 원시 농경 생활도 하였다.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은 빗살 무늬 토기이다. 그 뒤, 기원전 10세기를 전후하여 청동기 문화가 성립되었는데, 이 시대의 사람들은 주로 낮은 구릉 지대에 살면서 농경을 주업으로 하고, 무늬 없는 토기를 제작, 사용하였다.

청동기와 농경의 발달로, 이 때까지 유지된 공동체 사회 내에는 계층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사회를 다스리는 권력자가 나타나게 되었다.

학습 문제

1. 선사 시대의 유물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으며, 그것들은 생활에 어떻게 이용되었을까?

2. 우리 나라 구석기⋅신석기 시대의 주요 유적지는 어디일까?

3. 우리 나라의 청동기 문화는 어떻게 성장하였을까?

4. 청동기의 사용은 사회 생활에 어떠한 변화를 주었을까?

선사 시대의 동아시아

대략 100만 년 전부터 시작된 동아시아의 구석기 시대에는 네 번의 빙하기와 세 번의 간빙기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기후와 환경이 바뀌었다. 빙하기에는 지구 북반부의 일부분이 빙하로 덮여 있었으므로, 오늘날의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주변의 해수면은 지금보다 훨씬 낮았다.

그리하여, 당시에는 한반도에 제주도, 쓰시마 섬, 일본 등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빙하기 말에 이르러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높아져 황해가 생겨났으며, 일본은 대륙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와 같은 변화로 한반도가 생겨났으며, 그 후 몇 차례의 지각 변동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해안선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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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만~10만 년 전의 동아시아
15만~10만 년 전의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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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조상들은 환경의 변화를 극복하면서 생활 무대를 넓혀 갔다. 우리 민족은 한반도는 물론, 만주, 요서, 산뚱 지방에까지 활동 무대를 넓혀, 여러 지방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독자적인 문화와 전통을 세우게 되었다.

구석기 시대의 생활

우리 나라에 사람이 언제부터 살기 시작했는지는 현재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약 50만 년 이전에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이 여러 유적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구석기 문화의 유적이 발견된 곳으로는 함경 북도 웅기군 굴포리, 충청 남도 공주군 석장리, 평안 남도 상원군 검은모루, 충청 북도 제원군 점말 동굴과 청원군 두루봉 동굴,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등지가 있으며, 전국 여러 지역에 고루 퍼져 있다.

구석기인들은 주로 타제 석기와 골각기 등을 이용하여 짐승과 물고기를 잡아먹기도 하고, 나무 열매를 따 먹거나 나무 뿌리를 캐 먹으면서 동굴이나 토굴에서 살았다. 이러한 생활을 하는 사이에 구석기인들은 예술과 종교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신석기 문화의 시작

우리 나라의 신석기 시대는 약 6천년 경부터 시작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은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는데, 특히 해안 지대와 큰 강가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유적으로는 집터와 조개더미 등이 있다. 집터의 모양은 원형이거나 사각형이며, 땅을 파서 움막 같은 것을 짓고 살았다. 집의 한가운데에 불을 피우는 시설을 갖추기도 하였다.

유적지에서는 돌을 갈아서 만든 도끼, 화살촉, 맷돌 등 마제석기와, 뼈나 뿔로 만든 낚시, 송곳, 낫, 장신구와 여러 가지 토기 등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은 토기로서, 가장 널리 분포되어 있는 것은 빗살 무늬 토기이다. 이것은 모래흙을 구워 만들었는데, 짧거나 긴 선을 규칙적으로 사용한 무늬를 넣었고, 밑바닥은 대개 둥글거나 뾰족하게 만들었다. 빗살 무늬 토기는 거의 강가나 바닷가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이로써 당시에 어로 생활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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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 무늬 토기
빗살 무늬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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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과 목축 생활

신석기인들은 주로 강가나 해안에 살면서 물고기를 잡아먹거나, 사냥을 하거나, 조개류와 식물의 열매를 채집하여 먹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인간의 지혜가 발달함에 따라 점차 짐승을 기르고 작물을 가꾸게 되면서 한 곳에 머물러 살게 되었고, 토기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유적에서 돌로 만든 괭이와 맷돌, 뼈바늘과 방추차 등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로써 당시의 사람들이 농경 생활을 하였으며, 옷감을 짜서 옷을 만들어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대개 핏줄이 같은 씨족끼리 모여서 씨족장을 중심으로 생활을 했으므로, 이 때의 사회를 씨족 사회라 한다. 씨족 사회에서는 사냥, 고기잡이, 농경, 채집 등의 활동이 공동으로 이루어졌으며, 중요한 일은 씨족 회의를 통해 결정하였다.

이 때의 사람들은 만물에 영혼이 있는 것으로 믿고, 해, 달, 산천, 동⋅식물 등을 숭배하였으며, 특정 동물을 자기 씨족의 시조로 생각하기도 했다.

청동기 문화

기원전 10세기 전후에 이르러 무늬 없는 토기가 만들어지고, 청동기 문화가 성립되었다. 이 무늬 없는 토기는 대개 구릉에서 발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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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 없는 토기
무늬 없는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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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청동기 문화는 만주와 한반도 북서부 지방에서 차차 우리 나라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특히, 자루가 짧고 칼끝이 긴 세형 청동검과 청동을 부어 그릇이나 칼을 만드는 거푸집도 발견되고, 청동검 외에 도끼, 창, 칼, 거울, 방울 등의 청동기도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어, 우리 나라에서 독자적인 청동기 문화를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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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청동검(좌)과 세형 청동검(우)
초기의 청동검(좌)과 세형 청동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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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의 유적으로는 집터, 무덤 등이 있다. 여기에서는 청동기와 토기 외에도, 청동검을 본뜬 마제 석검을 비롯하여 돌로 만든 화살촉, 반달 모양의 돌칼 등의 유물이 나왔다. 집터는 신석기 시대보다 규모가 크고 집단으로 모여 있어, 사회 생활이 보다 활발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 때의 사람들은 무덤으로 고인돌과, 상자 모양으로 돌을 쌓아서 석관묘를 만들었다. 특히, 고인돌은 그 규모로 보아, 당시의 족장들이 많은 사람을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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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의 유물, 유적 분포
선사 시대의 유물, 유적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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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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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변동

청동기 시대가 되면서 벼농사가 시작되는 등 본격적으로 농업이 발달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탄화된 곡식과 볍씨 자국이 있는 토기, 그리고 곡식의 이삭을 자르는 반달 모양의 돌칼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때부터는 족장의 세력이 커지면서 사람들은 지역 단위의 집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족장들은 청동제 무기를 사용하여 세력을 넓혔다. 한편, 이 시대에 사회 계층이 형성되고, 개인은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족장은 그 권력을 강화시켜 나갔다.

이와 같이, 청동기 시대의 사람들은 앞 시대의 문화를 흡수하고 지역 단위의 집단 생활을 하면서 보다 발달된 사회를 이룩하게 되었다. 이 때에 우리 민족의 바탕이 마련되었고, 국가 생활도 시작되었다.

학습 정리

1. 우리 나라의 구석기 시대는 굴포리, 석장리, 검은모루 동굴, 점말 동굴, 전곡리 등지의 유물로 미루어 보아, 약 50만 년 이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2. 신석기 시대는 약 6천 년 전에 시작되었으며, 이 때를 대표하는 토기는 빗살 무늬 토기이다.

3.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10세기를 전후하여 시작되었으며, 무늬 없는 토기가 만들어지고, 벼농사가 시작되었다.

4. 우리 민족의 바탕은 무늬 없는 토기를 만들어 쓰던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다.

5. 청동기 시대가 되면서 사회 계층이 형성되고, 개인은 사유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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