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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Ⅱ. 삼국의 발전과 그 문화
  • 1. 삼국의 발전

1. 삼국의 발전

〔학습 개요〕

삼국은 초기의 여러 나라들을 통합하여,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 집권 국가를 건설하였다.

고구려는 태조왕 때 중앙 집권 체제의 기틀을 닦은 후, 소수림왕 때 내정을 정비하였다. 이어, 광개토 대왕, 장수왕 때에 극성기를 이루어, 중국 세력을 견제하고, 동북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백제는 고이왕 때 중앙 집권 체제의 기틀을 갖춘 후, 근초고왕 때에는 마한을 정복하고 중국에까지 진출하는 등 크게 융성하였다. 그러나 그 후 고구려, 신라와의 경쟁에서 뒤지고 말았다.

신라는, 비록 사회 발전이 다소 늦었으나, 내물왕 때 중앙 집권 체제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진흥왕 때에 이르러는 한강 유역을 확보하는 등 국력을 강화하였다.

학습 문제

1. 삼국의 발전 과정은 각각 어떠하였는가?

2. 신라의 한강 유역 확보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3. 가야가 중앙 집권 국가로 성장할 수 없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왕권의 강화

삼국은 일찍이 세워졌던 여러 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이어받아, 보다 발달된 나라의 모습을 갖추었다. 종래의 군장을 비롯한 지배자들은 중앙 귀족이나 관료로 흡수되어, 왕권이 크게 강화되어 갔다.

그리하여 삼국에서는 왕위가 점차 세습되었고, 왕권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지배 체제가 마련되었다. 이 무렵에 받아들인 불교는 왕실의 권위를 높여 주고, 나라의 정신적 바탕을 튼튼히 하는 구실을 하였다. 그리고 삼국은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자기 나라의 실정에 맞게 발전시켰다. 이와 같이 국가의 기반을 확립한 삼국은 4~6세기에 크게 번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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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의 세력 확장
삼국의 세력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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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성장

고구려는 불리한 지리적 환경을 극복하고, 중국 세력의 침략을 물리치면서 발전하였다.

2세기의 태조왕 때에는 옥저를 정벌하여 동해안으로 진출하였고, 이어서 고국천왕 때에는 5부족제를 5부의 행정 구역으로 개편하는 한편, 왕위 계승을 부자 상속으로 바꾸면서 왕권을 강화하였다.

이와 같은 고구려의 성장은 중국 세력과의 끊임없는 충돌을 가져왔다. 즉, 3세기 동천왕 때에는 서안평을 공격하여 위나라의 진출을 막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위나라의 관구검의 침입을 받기도 하였다. 4세기 미천왕 때에는 중국 세력을 고조선의 옛 땅에서 몰아 내고 영토를 넓혀 나갔다.

백제의 성장

온조가 세운 백제는 한강 유역에 터를 잡고 출발하였다(서기전 18). 한강 유역은 자연 환경이 유리하였고, 여러 지역의 문화가 합쳐지는 곳이어서 나라의 발전이 빨랐다. 즉, 일찍부터 부여, 고구려 계통의 유민이 흘러들어와, 그 곳에 살고 있던 마한 세력을 통합하면서 나라의 기틀이 잡히게 되었다. 백제는 3세기 고이왕 때에 한강 유역의 대부분을 통합하여 중앙 집권적 국가 체제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4세기 근초고왕 때에는 마한을 완전히 정복하여 남해안 일대까지 진출하였으며, 밖으로 동진과 교섭하였다. 특히, 이 때에는 북으로 고구려를 공격하고, 바다를 건너 요서, 산둥 지방 및 일본까지 힘을 뻗쳐 백제의 세력권을 크게 확장하였다.

신라의 성장

신라는 일찍이 경주 평야에서 박혁거세에 의해 세워졌으나(서기전 57), 오랫동안 소백 산맥에 막혀 외부와의 접촉 없이 성장하였다.

신라가 중앙 집권적 국가의 기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4세기 후반의 내물왕 때였다. 이 때부터 왕위는 김씨족이 독차지하게 되었고, 왕의 칭호가 마립간으로 바뀌었으며, 고구려를 통해 전진과 교섭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사회로 성장하였다. 이어, 5세기의 눌지왕 이후 나⋅제 동맹을 통해 고구려의 세력을 견제하고, 국력을 길러 자립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가야

가야의 여러 나라들은 낙동강 서쪽 지역에서 일어났다. 이 지방은 일찍부터 철기 문화와 농업이 발달한 곳이므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이룩하였다.

가야는 북쪽의 대가야와 남쪽의 금관 가야를 중심으로 연맹체를 이루고 있었다. 가야는 문화의 수준이 높아서 일본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크게 뻗어나지 못하여, 백제와 신라의 압력으로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가야는 6세기에 멸망하였지만, 그들이 남긴 문화는 신라에 이어져서 크게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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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토기
가야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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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융성

고구려는 중국과 싸우면서 발전하여 갔다. 위, 전연 등과 자주 충돌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으며, 백제와의 대결에서 큰 타격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4세기 후반의 소수림왕 때에는 전진과 평화적 외교 관계를 맺고, 불교를 받아들였다. 또, 태학을 세우고, 율령을 만들어 내정을 정비함으로써 융성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를 토대로 하여 광개토 대왕 때에는 크게 영토를 확장할 수 있어 요하 건너까지 세력을 넓혔고, 흑룡강 유역까지 지배하였다. 이어,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이북의 땅을 점령하고, 신라를 침략해 온 왜를 물리쳤다. 만주의 통구에 있는 광개토 대왕릉비가 이 사실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장수왕 때에는 중국의 남북조를 견제하는 한편, 서울을 평양성으로 옮겼다 (427). 이어, 백제를 쳐서 남쪽으로 밀어 냄으로써 그 세력이 중부 이남까지 미쳤는데, 이러한 사실은 중원 고구려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무렵의 고구려는 동북 아시아의 최강국이 되어 중국과 맞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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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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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중흥

번창하던 백제는, 고구려의 압력으로 한강 유역을 잃은 후, 문주왕 때에 서울을 웅진성으로 옮겼다. 백제는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에 대항하였으나, 계속되는 중앙 귀족의 싸움으로 국력이 약화되었다. 그러나 동성왕 때에는 귀족 간의 갈등을 수습하고 국력 회복의 길을 마련하였으며, 무령왕 때에는 강력한 전제 왕권을 수립하고, 중국 남조와 교섭하여 새로운 부흥을 꾀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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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의 내부(좌)와 출토 유물(우)
무령왕릉의 내부(좌)와 출토 유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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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왕 때에는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의 중흥을 위해 서울을 사비성으로 옮기고(538), 정치 제도, 행정 구역을 정비하면서 불교를 통해 국민 사상을 통합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신라와 연합하여 한강 유역을 되찾는 등 나라를 부흥시키려 하였으나, 신라와의 싸움에 패배하면서 그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신라의 비약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에 비하여 발전이 더디었다. 4세기 말을 전후하여 신라는 한때 고구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나⋅제 동맹을 맺은 후, 어느 정도 자립할 수 있는 국력을 쌓았다. 그리고 지증왕 때에는 가축을 이용하여 농업 생산을 증대시켰고, 법흥왕 때에는 불교를 공인하고 율령을 반포하여 더욱 발전하였다.

이어, 진흥왕 때에는 화랑도를 개편하여 국가 발전의 초석으로 삼고, 고구려와 가야를 공략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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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의 유적(단석산, 경북 경주군)
화랑의 유적(단석산, 경북 경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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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먼저 한강 유역을 확보하여 중국과 직접 교류하였고, 이어서 대가야를 정벌하여 낙동강 유역을 전부 차지하였다. 나아가, 동해안을 따라 함흥 지방으로 진출하여, 영토를 북방으로 넓혀 강력한 나라가 되었다. 이 때에 단양 적성비와 4개의 순수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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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적성비
단양 적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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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신라의 한강 유역의 점령은 신라로 하여금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였고, 아울러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삼국과 한강 유역

삼국은, 안으로는 국가 체제를 갖추는 한편, 밖으로는 영토 확장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다. 이 과정에서 삼국이 다투어 차지하려던 지역은 한강 유역이었다.

백제는 이 곳을 중심으로 나라의 힘을 키웠고, 황해를 통해 중국과 교류하면서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고구려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겨 백제는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고구려는 광개토 대왕, 장수왕 때 이 지역을 차지하여 크게 번영하였다. 그러나 신라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김으로써 고구려는 한반도의 주도권을 신라에게 넘겨 주게 되었다.

신라는 진흥왕 때 한강 유역을 확보하여 고구려와 백제의 연결을 끊었고, 중국과의 교통로를 개척하게 되었다. 더구나 이 지역의 경제력을 흡수하여, 신라는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 학습 정리 ◇

1. 삼국은, 안으로는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지배 체제를 갖추고, 밖으로는 영토를 확장하면서 4~6세기에 크게 발전하였다.

2. 고구려는 광개토 대왕, 장수왕 때에 전성기를 이루어 동북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3. 백제는 한강 유역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일찍부터 중국과 교류하면서 국가 체제를 갖추었다.

4. 신라는 한강 유역을 확보함으로써 이 지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5. 가야는 문화 수준이 높았으나, 백제와 신라의 압력으로 위축되어, 중앙 집권 국가로 성장하지 못하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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