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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고려 후기의 문화

〔학습 개요〕

고려 후기의 문화는 새로운 경향을 보였다. 불교는 선종을 중심으로 융합되어 조계종이 성립되었으며, 원으로부터 들어온 성리학은 불교를 대신하여 새로운 사상으로 자리잡아 갔다.

문학에서는 자주 의식이 강한 문학 작품이 창작되었고, 역사학에 있어서도 민족 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역사서가 쓰여졌다.

고려는 세계 최초로 금속으로 된 활자 인쇄술을 발명하여 우리 민족의 슬기를 보여 주었으며, 밖으로부터 과학과 기술을 받아들여 이것을 실제 생활에 활용하였다.

학습 문제

1. 고려 후기 불교의 대표적인 종파는 무엇이며, 지눌의 사상은 어떠한 것인가?

2. 성리학의 수용은 고려 말의 사상계와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

3. 고려 후기의 문학과 역사학 분야에서 나타난 주요 특징은 무엇인가?

4. 고려 후기의 과학 기술은 어떻게 발전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세계적인 자랑거리는 무엇인가?

불교의 변화

무신 정변 이후, 고려의 불교계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까지 문신 귀족들의 보호를 받아 왔던 교종은 쇠퇴하고, 그 동안 침체해 있던 선종이 무신 정권 시대에 와서 조계종으로 통합되어 교세를 크게 떨쳤다.

조계종의 교세를 크게 발전시킨 이는 보조국사 지눌이었다. 그는 당시 불교계의 타락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불교 이론을 세워 선종 중심의 불교 개혁 운동을 폈다. 지눌은, 인간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사실을 먼저 깨닫고, 이를 바탕으로 수행을 계속하여야 하며, 이 수행에 있어서는 참선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처럼 지눌은 선종을 중심으로 하여 교종을 융합하고자 하였다.

한편, 고려는 몽고의 침입을 받아 강화도에서 항전하면서 팔만 대장경을 조판하였다. 이것은 부처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려는 굳은 신앙심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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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 대장경판(합천 해인사)
팔만 대장경판(합천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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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려 후기에 이르러 사원은 권문 세족의 후원을 받아 넓은 농장을 차지하고, 고리대업이나 장사를 하여 재산을 축적하는 등 승려들의 비행은 사회의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리하여 불교는 고려 말의 어지러운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을 잃고 말았다.

성리학의 수용

무신 정권 때 큰 타격을 받은 유학은 충렬왕 때에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그 뒤, 충선왕은 원의 서울에 만권당을 세움으로써, 고려와 원의 학자들을 교류하게 하여 고려의 유학을 발전시켰다.

고려 후기에는 성리학을 받아들임으로써 유학의 발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성리학은 송의 주자가 완성한 것으로, 우주의 근본 원리와 인간의 심성 문제를 밝히려는 유학이었다.

성리학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이는 충렬왕 때의 안향이었다. 그 밖의 성리학자로는 백이정, 이제현, 정몽주, 길재 등이 유명하였다.

고려 말의 사대부들은 성리학을 받아들여 불교를 비판하였다. 처음에는 사원의 폐단과 승려들의 비행을 공격하였으나, 정도전 등은 불교는 인륜에 어긋나는 것이라 하여 불교 자체를 공박하였다.

문학과 역사학

고려 후기에는 문학에서도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이 시기에 문학을 주도한 계층은 새로이 성장한 신진 사대부들이었다.

한문학에 있어서는 이인로의 파한집, 이제현의 역옹패설 등과 같은 수필 문학이 발달하였다. 한시도 발달하여 이인로, 이규보 등이 유명하였는데, 이규보는 고구려의 건국을 노래한 동명왕편에서, 종래의 한문학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문장체를 구사함으로써 새로운 문학 세계를 추구하였다. 또, 민중의 감정을 읊은 노래로서 정읍사, 청산별곡 등이 유행하였다.

역사에 관한 저술로는 삼국유사가 가장 유명하다. 승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는 단군 기록, 불교 관계 기사, 향가 등 우리 나라 고대사에 관한 귀중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몽고의 침략으로 쓰라린 시련을 겪고 있던 우리 민족에게 자각과 자부심을 일깨워 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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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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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이승휴의 제왕운기와 각훈의 해동고승전도 남아 있어,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금속 활자와 화약

고려에서는 여러 차례 대장경을 새기는 등 목판 인쇄술이 발달했을 뿐 아니라, 금속 활자가 발명되어 활판 인쇄술이 발달하게 되었다. 고종 때 금속 활자로 상정고금예문이라는 책을 간행하였으니(1234), 이는 서양보다 200여 년이나 앞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금속 활자로 인쇄된 책은 1377년에 흥덕사에서 간행된 직지심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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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경
직지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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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에는 화약 제조법도 개발되었다. 화약 만드는 법을 배워 이를 발전시킨 최무선은, 화통도감의 설치를 건의하고, 거기에서 화약과 각종 화포를 만들어 왜구를 무찌르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화약은 우리 나라의 무기 제조 기술에 큰 발전을 가져왔다.

또, 고려는 원과 문화를 교류하는 과정에서 천문, 수학, 의학 등 발달된 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였다. 이 문화는 고려의 과학 기술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주어 당시의 천문학과 의학 기술을 크게 향상시켰다.

목화의 전래

고려 시대에는 벼농사가 널리 보급됨에 따라 수리 시설이 많이 확충되었으며, 이에 따라 농업 생산력이 높아졌다. 또, 원의 농서인 농상집요를 받아들여 농업 기술의 개량을 가져왔다.

특히, 고려 말에는 목화를 심어 우리 나라 의복 재료에 큰 발전을 가져왔다. 목화가 보급된 것은 공민왕 때에 원에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온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무명은 중요한 옷감으로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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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 시배지(경남 산청)
목화 시배지(경남 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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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고려 시대의 목조 건물로는 안동 봉정사의 극락전, 영풍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조사당, 예산 수덕사의 대웅전이 유명하다. 이들 건물의 기둥은 가운데를 불룩하게 만들어 안정감을 준 배흘림(엔타시스)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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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무량수전의 실측도
부석사 무량수전의 실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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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으로는 목조 건축의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경천사 10층 석탑이 유명하다. 이 탑은 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 양식은 조선 시대의 원각사지 10층 석탑으로 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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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사 10층 석탑
경천사 10층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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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는 공민왕이 그렸다는 천산대렵도와 혜허가 그린 양류 관음도가 유명하다. 글씨로는 신품 4현의 한 사람인 최우가 뛰어났고, 서체로는 전기에 유행한 구양순체와 왕희지체 대신에 조맹부체가 유행하였다.

음악은 우리 나라의 전통 음악인 향악과 중국 음악인 당악이 있었으며, 송에서 대성악이 수입되어 궁중 음악으로 발달하였다. 향악곡으로는 동동, 대동강 등이 있었다. 이와 함께 산대놀이라는 가면극도 유행하였다.

◇ 학습 정리 ◇

1. 고려 후기의 불교는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융합하려는 조계종이 지눌에 의하여 크게 발전하였다.

2. 신진 사대부 계층에 의하여 수용된 성리학은, 불교를 대신하여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한 사상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3. 고려 후기에는 한문학이 성하고, 민중의 감정을 읊은 시가 문학도 대두하였으며, 민족 의식을 일깨워 주는 역사서도 편찬되었다.

4. 고려 후기에는 인쇄술과 화약 무기 제조술 등의 과학 기술이 발달하였으며, 팔만 대장경의 조판과 금속 활자의 발명은 우리 민족의 세계적인 자랑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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