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6차 교육과정
  • 중학교 국사 6차(상)
  • Ⅲ. 중앙 집권 국가의 형성
  • 3. 삼국의 문화

3. 삼국의 문화

학습 개요

삼국의 문화는 귀족 생활과 불교 신앙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특히, 불교는 삼국의 발전과 국민의 정신적 통일에 이바지하였고, 학문과 예술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삼국의 문화는 회화, 조각, 공예, 건축 등 미술 분야에서 뛰어났는데, 각각 특색 있는 문화적 전통을 이루었다. 고구려의 예술품은 힘찬 기상이 서려 있고, 백제의 예술품은 우아하고 세련되었으며, 신라의 예술품은 소박하면서도 조화의 미를 지니고 있다.

또, 삼국 시대에는 야금술, 천문학, 수학 등 과학 기술이 발달하여 훌륭한 문화 유산을 남겼다.

이러한 삼국 문화는 일본으로 전해져, 일본 고대 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학습 문제

1. 불교의 전래는 삼국의 문화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

2. 삼국의 과학 기술 중에서 천문학, 역법 등이 발전하였던 이유는 무엇인가?

3. 삼국의 문화는 어떠한 분야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는가?

4. 삼국의 미술은 각기 어떠한 특색을 가지고 있는가?

종교

삼국 시대에 민간에서는 천신을 비롯한 여러 자연신을 섬기는 무속, 점술 등의 토속 신앙이 널리 유행하였다. 국왕은 시조에 대한 제사를 받들면서 천신의 후손으로 자처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 하였다.

그러나 중앙 집권 국가로 발돋움하면서 이러한 여러 신앙을 가지고서는 확대된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없었다. 이에 삼국은 새로운 종교인 불교를 받아들여 국민의 정신적 통일을 꾀하게 되었다.

고구려는 소수림왕 때에 전진으로부터, 백제는 침류왕 때에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였다. 신라에는 이보다 늦은 눌지왕 때에 고구려로부터 불교가 전해졌으나, 뿌리 깊은 고유 신앙과 귀족의 반발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다가, 법흥왕 때에 이르러 이차돈의 순교가 있은 후에야 비로소 공인되었다(527). 이후, 불교는 국가를 수호하는 데에 유익한 종교라고 생각되어 왕실의 보호를 받으면서 국가적 신앙으로 발전하였다. 신라에서는 불교식 왕명을 사용하여 부처의 가족으로 자처하면서 왕의 권위를 높이려 하였다.

확대보기
불교의 전래
불교의 전래
팝업창 닫기

또, 삼국은 황룡사, 미륵사 등과 같은 거대한 절을 짓고, 대규모의 불교 집회를 열어 국가의 평안과 발전을 빌기도 하였다. 자장의 건의로 세워진 황룡사 9층탑은 9개국을 정복하려는 신라인의 염원이 담긴 상징물이었다. 그리고 원광은 세속 5계를 통해 사회 윤리와 호국 사상을 심어주기도 하였다.

확대보기
익산 미륵사지 석탑(전북 익산)
익산 미륵사지 석탑(전북 익산)
팝업창 닫기

불교는 학문과 예술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삼국은 불교를 통하여 음악, 미술, 과학 기술 등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이 과정에서 중국과 서역의 문화가 우리 나라에 전해져서 민족 문화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에 이바지하였다.

한편, 삼국 사회에는 도교 신앙도 널리 퍼져 있었다. 이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 보이는 사신도나 백제의 산수무늬 벽돌, 금동 용봉 봉래산 향로 등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 말기에는 불교 세력을 억압하는 데에 도교 세력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학문과 과학 기술

우리 나라에 한자가 전래된 것은 고조선 시대부터였지만, 삼국 시대에 들어와서 한자가 널리 사용되면서 학문이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한자는 주로 귀족층에서 사용하였는데, 설총은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한자의 음과 훈을 따서 우리말을 표기하는 이두를 정리하였다.

고구려에서는 소수림왕 때에 수도에 태학을 세워 유학을 가르쳤고, 그 후 지방에는 경당을 세워 청소년들에게 한학과 무술을 가르쳤다. 광개토 대왕릉 비문을 살펴보면, 고구려에서는 한학이 매우 발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백제에서는 의박사, 역박사, 오경 박사 등의 박사 제도를 두어 여러 분야의 학문과 기술을 진흥시켰으며, 논어와 천자문 등을 일본에 전해 줄 정도로 한학의 수준이 높았다. 세련된 문장으로 쓰여진 부여 출토의 사택지적 비문은 당시 백제의 한학 수준을 알려 주고 있다. 그리고 신라의 진흥왕 순수비를 통해서 당시 신라의 한학 수준을 살펴볼 수 있다.

확대보기
사택지적비
사택지적비
팝업창 닫기

왕권이 강화되고 한학이 발달함에 따라, 자기 나라의 역사를 정리하려는 의식이 싹텄다. 고구려에는 일찍이 유기 100권이 전해져 왔었는데, 영양왕 때 이문진이 이를 간추려 신집 5권을 편찬하였다. 백제에서는 근초고왕 때 고흥이 서기를, 신라에서는 진흥왕 때 거칠부가 국사를 편찬하였다.

한편, 한학이 널리 보급되면서 천문학, 의학, 수학 등 과학 연구도 활발하였고, 건축, 토목, 공예 등 기술 분야에서도 큰 발전을 보였다.

삼국 시대에는 주요 산업인 농업의 발전과 관련하여 천문학, 역법 등이 발달하였다. 경주의 첨성대는 신라의 발달된 천문학 수준을 반영한 것이며,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 된 천문대로서, 우리 민족의 우수한 창조물이다. 삼국인들은 수시로 일식, 월식, 혜성, 지진 등 천문 기상을 세밀하게 관측하였고, 천체 현상의 이변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삼국 시대에는 국가 운영에 필요한 토지 측량, 조세 징수 등 행정 실무와 고분, 성곽, 궁궐을 만드는 일에 수학 지식을 활용하였다. 그리고 금, 은, 구리, 철을 소재로 하는 제련술, 용접술, 주조술이 발달하여 우수한 무기, 장신구, 그릇 등이 만들어졌다.

고분 벽화

삼국 시대에는 귀족 중심의 미술이 발달하였으며, 특히 고분 미술과 불교 미술이 뛰어났다.

고구려의 미술은 힘과 정열이 넘쳤고, 백제의 미술은 우아하고 세련되었으며, 신라의 미술은 소박한 가운데 조화 있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이와 같이 삼국의 미술은 그 국가의 성격에 따라 각기 차이가 있었으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점차 많은 공통성을 지니게 되어, 후에 민족 문화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삼국은 고분을 통하여 많은 예술품을 남겼는데, 고분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고대인들의 정신과 지혜가 담긴 예술의 보고이다.

고구려의 미술은 옛 수도였던 국내성과 평양성 부근에 있는 고분을 통해 알 수 있다. 고구려 고분은 초기에는 돌을 쌓아올린 돌무지무덤이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만주 집안에 있는 장군총이다.

후기에는 흙으로 덮은 봉토 내부에 돌방이 있는 굴식 돌방무덤이 주류를 이루었다. 굴식 돌방무덤의 일부 돌방 안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쌍영총, 무용총, 강서 고분 등이 유명하다. 여기에는 풍속도, 수렵도, 무용도, 사신도 등이 그려져 있어, 고구려인의 씩씩한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강서 고분의 돌방에 그려진 사신도는 고구려 고분 벽화 중에서도 높은 회화 수준을 보여 주는 것으로, 힘과 패기가 넘쳐 흐르고 있다.

확대보기
강서 대묘 현무도(평남 강서)
강서 대묘 현무도(평남 강서)
팝업창 닫기

백제의 고분은 서울, 공주, 부여에 많이 남아 있다. 서울 석촌동에 있는 백제 고분은 고구려 초기의 고분과 비슷한 돌무지무덤이다. 이를 통하여 백제 왕실이 고구려와 깊은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봉토 안의 방을 벽돌로 쌓아올린 무덤인데,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서는 무령왕에 대한 기록인 지석과 함께 금제 관식, 무기, 그릇, 구리 거울 등 많은 껴묻거리가 발견되어 당시의 발달된 공예 기술을 엿보게 해 준다.

백제의 고분에도 고구려의 고분과 같이 벽화를 그린 것이 있는데, 부여 능산리 고분의 사신도는 매우 세련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확대보기
부여 능산리 고분 벽화
부여 능산리 고분 벽화
팝업창 닫기

한편, 신라의 고분은 수도인 경주 부근에 많이 남아 있다. 신라의 고분은 4세기 이후 거대한 돌무지 덧널무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고분에서는 금관을 비롯하여 금제 장신구, 유리 제품, 생활 도구 등 많은 껴묻거리가 발견되어 신라 공예품의 보고가 되고 있다. 특히, 금관총, 천마총 등지에서는 금관이 출토되었고, 천마총에서는 천마도가 발견되어 신라 미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확대보기
천마도(경주 천마총)
천마도(경주 천마총)
팝업창 닫기

불교 미술

삼국은 중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여 그 문화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큰 절과 탑을 세우고 불상을 만드는 등 불교 미술을 크게 발전시켰다. 따라서, 불교 미술은 고분 미술과 함께 삼국 시대 미술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삼국의 건축물 중 대표적인 것은 탑으로서, 처음에는 목탑이 많이 세워졌으나, 후에는 주로 석탑이 만들어졌다. 백제의 석탑으로는 목탑의 건축 양식을 따른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과 부여의 정림사지 5층 석탑이 유명하다. 특히, 정림사지 5층 석탑은 균형이 잘 잡히고 아름답게 만들어진 걸작품이다. 신라의 탑으로는 전탑의 형식을 따른 분황사 모전 석탑이 남아 있으며, 황룡사 9층탑은 국력을 기울여 세운 것이었으나, 고려 때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졌다.

확대보기
분황사 모전 석탑(경북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경북 경주)
팝업창 닫기

삼국의 불상으로는 신라의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 밖의 불상으로는 독특한 개성을 보여 주는 고구려의 연가 7년명 금동 여래 입상, 친근감 있는 미소를 머금고 있는 백제의 서산 마애 삼존불상이 유명하다.

확대보기
서산 마애 삼존불상(충남 서산)
서산 마애 삼존불상(충남 서산)
팝업창 닫기

한편, 최근 부여의 백제 절터에서 발견된 금동 용봉 봉래산 향로는 백제 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이 한층 돋보이는 걸작품으로, 백제의 사상과 공예 기술의 참맛을 보여 주고 있다.

시가와 음악

우리 민족은 예부터 노래와 춤을 좋아했는데, 음악은 삼국 시대에 이르러서 중국 음악과 불교 음악의 영향을 받아 더욱 발달하였다.

고구려의 시가로는 유리왕이 지었다는 황조가와 을지문덕이 지은 5언시가 전해지고, 백제의 시가로는 정읍사와 지리산가 등이 전해지며, 신라의 시가로는 혜성가, 서동요 등의 향가가 전해진다.

한편, 삼국에서는 여러 가지의 악기가 만들어졌고, 노래도 지어져 음악이 크게 발달하였다. 고구려에는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등 많은 악기가 있었고, 왕산악은 7현금을 개량하여 거문고를 만들고 100여 곡을 작곡하였다. 백제의 음악은 고구려와 비슷하였으며, 일본에 전해져서 고대 일본 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신라의 악기로는 거문고, 가야금, 비파, 피리 등이 있었다. 옥보고는 거문고를 잘 타서 신라 음악에 맞는 30여 곡을 지었으며, 백결 선생은 방아타령을 남겼다. 또, 대가야 출신의 우륵은 진흥왕 때 가야금을 만들고 12곡을 작곡, 보급하였다.

도움글

* 금동 용봉 봉래산 향로

이 향로는 부여 능산리 고분 근처에 위치한 절터에서 발견되었다. 전체 높이가 64cm로, 동북 아시아에서 출토된 향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향로는 4개 부분으로 되어 있다. 뚜껑 부분은 봉황이 여의주를 목에 끼고 날개를 활짝 펴서 날아가려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5명이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상, 크고 작은 산, 인물상, 동물상, 기마상, 불꽃무늬 등 화려한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몸통에는 연꽃, 물고기, 동물상 등 여러 가지 무늬가 새겨져 있다. 밑에는 용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으로 몸통을 입으로 받들고 있고, 또 구름과 인동무늬가 소용돌이치는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

이 향로는 백제 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이 한층 돋보이는 작품이다.

확대보기
[금동 용봉 봉래산 향로]
[금동 용봉 봉래산 향로]
팝업창 닫기

학습 정리

1. 불교는 국민의 정신적 통일에 이바지하였고, 학문과 예술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2. 삼국 시대에는 주요 산업인 농업과 관련되는 천문학과 역법이 발달하였다.

3. 삼국의 문화는 귀족 생활과 불교 신앙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는데, 특히 고분 미술과 불교 미술이 뛰어났다.

4. 고구려의 미술은 힘찬 기상을 지녔고, 백제의 미술은 우아하고 세련되었으며, 신라의 미술은 소박하면서 조화의 미를 지녔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