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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Ⅲ. 서민 문화의 발달
  • 2. 한글 소설과 판소리

2. 한글 소설과 판소리

학습 개요

조선 후기에는 농촌 사회가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서당 교육이 확대되면서 서민층의 문예 활동도 활발해졌다. 문화의 폭은 양반에서 서민층에까지 확대되었고, 문예 활동도 양반 중심에서 서민 중심으로 점차 바뀌어 갔다.

이리하여 서민을 주제로 한 한글 소설이 널리 보급되고, 서민이 창작한 문학과 예술이 대두하였으며, 서민들이 즐겨 부르는 민요나 판소리가 보급되었다.

이 시기에는 산수화, 풍속화, 민화가 유행하였다. 공예에서는 실용성이 강조되었으며, 서민 생활과 관련된 공예품의 생산이 활발해졌다. 또, 서민 오락이 각 지방의 고유한 풍속으로 발전하였다.

학습 문제

1. 조선 후기에 서민 문화가 발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2. 서민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문학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었는가?

3. 조선 후기의 그림에 나타난 새로운 경향은 무엇인가?

4. 조선 후기 서민들의 오락 활동은 어떠하였는가?

서당 교육

조선 후기에는 서민들도 교육을 받을 기회가 많아졌다. 서당이 늘어나 서민의 자제들도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밖에 한양 등 도시 지역에는 소설책 등을 돈을 받고 빌려 주는 곳이 있어 서민들도 지식이나 예술에 접할 수 있는 길이 넓어졌다. 이처럼 서민이 교육을 받을 길이 넓어지고 지식이나 예술에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됨에 따라, 서민들 가운데서도 학식을 갖춘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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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김홍도)
서당(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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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분위기에서 한글을 익힌 여성들도 늘어났다. 그리하여 이 무렵에는 서민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한글 소설이 보급되었다.

한글 소설

서민들이나 여성들 중에서 한글을 깨친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이들 가운데 한글 소설이나 사설시조 등의 작품을 내놓는 사람들도 나왔다.

한글 소설로는 홍길동전, 구운몽, 춘향전 등이 대표적인 작품으로, 이들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혀지고 있다. 이러한 한글 소설은 주로 서민 생활과 그들의 소망을 담고 있으며, 양반 사회의 그릇됨을 지적하고 이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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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허균)
홍길동전(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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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시조는 조선 후기에 유행한 새로운 형식의 시조였다. 우리 민족의 독특한 멋을 풍기는 사설시조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을 자유로이 나타낼 수 있어서 서민과 여성들이 즐겨 읊었다.

진경 산수화

그림에도 변화가 있었다. 관념적인 산수를 그리는 데에서 벗어나 우리 나라의 경치를 우리 식으로 그리는 화가들이 나타났다.

또, 우리의 생활 모습이나 풍속을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그리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 후기에는 산수화 외에 풍속화와 민화를 즐겨 그렸다.

영조 때의 화가 정선은 우리 나라의 경치를 독특한 화풍으로 그리는 진경 산수화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의 그림으로는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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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전도(정선)
금강전도(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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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김득신, 신윤복은 이 시대의 생활 모습이 담긴 풍속화를 즐겨 그렸다. 특히, 김홍도와 김득신은 농민, 수공업자, 상인 등 서민들의 생활 모습을 구수하고 익살스럽게 표현하였다.

한편, 신윤복은 도시 양반의 풍류 생활과 부녀자의 풍습 등을 잘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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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 풍경(신윤복)
단오 풍경(신윤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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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름 없는 많은 화가들이 민화를 남겼다. 민화에는 서민들의 생활 감정이나 신앙과 관련된 내용들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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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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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에서도 우리의 독특한 서체를 이루려는 움직임이 나타나 중국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서체가 발달하였다. 그리하여 금석학과 고증학의 대가인 김정희는 추사체라고 일컬어지는 독특한 서체를 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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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의 글씨
김정희의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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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 백자

조선 후기에는 서민적인 감각이 깃들여 있고 실생활에 필요한 공예품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도자기 공예와 목공예에서 잘 나타났다.

도자기 공예로는 청화 백자가 유명하다. 흰 바탕에 푸른 색깔로 산수, 화조, 초목 등이 은은하게 그려져 있는 청화 백자는 소박한 색조와 아름다운 선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도자기와는 다른 우리만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청화 백자는 주로 항아리, 술병, 꽃병, 연적, 필통 등 실용적인 것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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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 백자
청화 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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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예품으로는 장롱, 책상, 소반 등 생활 용품을 주로 만들었다. 이 밖에 죽세공품, 나전 칠기 등의 제작 기술도 발달하였다. 이러한 공예품은 양반뿐만 아니라 서민들도 많이 사용하였다.

한편, 조선 후기에 이루어진 건축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는 화엄사의 각황전, 금산사의 미륵전, 법주사의 팔상전 등이 있는데, 이 건물들은 한결같이 뛰어난 곡선미로 유명하다. 정조 때에 만들어진 수원성에는 조선 후기 성곽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성을 쌓을 때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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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팔상전(충북 보은)
법주사 팔상전(충북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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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오락에서도 서민이 주체가 되어 즐기는 판소리와 같은 서민 오락이 성행하였다.

한글 소설의 내용을 우리 나라 고유의 창법에 따라 노래와 말로 풀어 가는 판소리는 구수한 가락과 독특한 연출, 그리고 서민 감정을 어루만져 주는 내용 등으로 서민층에 호소력이 컸다. 판소리는 서민들은 물론이고 양반층까지 즐겼다.

이와 같이 판소리가 인기가 있자, 이것을 극으로 꾸민 창극도 발달하였다. 판소리의 창작과 정리에 공이 큰 사람은 19세기 후반기의 신재효였다.

이 시기에는 서민적 해학과 사회 풍자성이 풍부하고, 형식의 구애를 받지 않는 잡가도 유행하였다. 타령, 육자배기, 사랑가, 수심가 등이 널리 불린 잡가였다.

농촌에서는 두레를 중심으로 농악을 즐겼고, 지방에 따라 탈춤, 오광대놀이, 꼭두각시놀이 등 그 지방 고유의 오락을 즐겼다. 탈춤은 주로 양반 사회의 부패와 모순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부녀자들을 위한 놀이도 등장하였다. 부녀자들은 단오절에는 그네뛰기를, 정월에는 널뛰기를 즐겼다. 남부 해안 지방의 부녀자들은 달 밝은 밤에 강강술래를 즐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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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서민 오락
조선 후기의 서민 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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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글

* 강강술래의 유래

강강술래는 전라도 지방에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속 놀이의 하나이다. 음력 8월 한가윗날 달 밝은 밤에, 곱게 단장한 부녀자들이 수십 명씩 모여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늘어서서 강강술래라는 후렴이 붙은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면서 뛰노는 놀이이다.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수군을 거느리고 왜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적의 군사에게 해안을 경비하는 우리 군사의 수가 많도록 보이고, 또 왜군이 우리의 해안에 상륙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하여 활용하였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은 이러한 목적으로 부녀자들로 하여금 수십 명씩 떼를 지어 해안 지대의 산에 올라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돌면서, 강강술래라는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는 것이다.

학습 정리

1. 조선 후기에는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서당 교육이 보급되면서 서민들의 문예 활동이 활발해졌다.

2. 조선 후기에는 서민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한글 소설과 사설시조 등의 국문학이 발달하였다.

3. 그림에서는 서민적인 정취를 표현한 풍속화와 민화가 유행하였으며, 진경 산수화가 발달하였다.

4. 서민 오락으로는 판소리와 창극이 발달하였으며, 탈춤과 오광대놀이 등 지방 고유의 놀이가 유행하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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