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하면서 왕족인 부여씨와 8개의 귀족 가문이 왕과 연합하여 정치를 주도하였다. 이 중 귀족들은 정사암에 모여서 재상을 선출하였는데, 이는 귀족 회의의 전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중앙에는 왕 밑에 좌평을 비롯한 16등급의 관리가 있어 나랏일을 맡아 보았는데, 그 중에서 상좌평이 최고 책임자였다. 사비로 천도한 후에는 6좌평 외에 새로 22부의 실무 관청을 두어 행정을 분담하였다. 그 후 수도는 5부로, 지방은 5방으로 각각 나누었으며, 지방에는 중앙의 관리를 보내 행정과 군사 일을 맡아 보게 하였다. 지방의 요지에는 한때 22개의 담로를 두고 왕족을 보내 다스렸다.
⋅ 백제의 중국 진출 ⋅
중국 역사서(‘양서’)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백제는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에 있었다. 진나라 시대에 고구려가 요동을 점유하니, 백제는 요서, 진평 두 군을 점령한 후에 백제군을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