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7차 교육과정
  • 중학교 국사 7차
  • Ⅱ. 삼국의 성립과 발전
  • 1. 삼국의 형성
  • [3] 신라가 국가 체제를 정비해 간 과정은?
  • 골품제와 정치 제도

골품제와 정치 제도

신라는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왕권을 강화하고, 독특한 신분 제도인 골품제를 마련하여 통치 기반을 정비해 나갔다. 골품제는 각 지방의 부족장들을 그 세력의 크기에 따라 등급을 두어 중앙 귀족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성립하였다. 왕족은 성골, 진골에 속하고, 일반 귀족들은 6두품 이하의 각 두품에 속하였다.

왕위는 처음에는 성골에서 차지하였으나 무열왕부터는 진골 출신이 왕이 되었고, 3두품 이하는 평민 신분이 되었다. 신라인의 사회 활동과 정치 활동은 골품에 따라 결정되었다. 진골은 최고 귀족으로서 중요한 관직을 독점하였고, 6두품은 6등급 아찬까지의 벼슬만 할 수 있었으므로 정치보다는 주로 학문과 종교 쪽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신라는 귀족 대표들이 모인 화백 회의에서 국가의 중요한 일을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다. 화백 회의를 주재하는 상대등은 귀족 세력의 대표자로서 수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왕권이 강화되면서 집사부중시(시중)가 행정을 총괄하였다. 행정 구역은 수도를 6부, 지방을 5주로 나누어 다스렸다.

도움글

⋅ 골품과 결혼 ⋅

골품제 아래에서는 같은 신분끼리 결혼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같은 진골이라도 경주 출신과 지방 소국 왕족의 후예들과는 차별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금관가야의 왕족으로 진골 신분이 되었지만 진흥왕의 아우 숙흘종의 딸 만명과의 결혼이 어렵게 이루어졌다.
또, 경주 출신 진골 김춘추김유신의 누이와 결혼하여, 한때 동료 진골 귀족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였다.
천마도 | 경북 경주 천마총 출토
골품과 관등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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