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간의 세력다툼은 광개토대왕이 즉위한 4세기 말부터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삼국의 발전을 촉진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삼국 간의 세력다툼에서 주도권을 잡은 것은 중국 세력과 싸움을 통해 성장한 고구려였다.
광개토대왕은 강화된 국력으로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영토를 크게 넓혀 고구려의 전성 시대를 열었다. 그의 업적은 만주 집안에 남아 있는 광개토 대왕릉비에 기록되어 있다. 그가 죽은 뒤, 고구려 사람들은 그를 영토를 크게 넓혔다는 뜻으로 ‘광개토왕’이라 하여 그의 위업을 기렸다.
⋅ 광개토대왕의 정복 활동 ⋅
광개토대왕은 먼저 4만의 군사로 백제를 공격하여 임진강 일대를 차지하였다. 이어 북쪽의 거란을 원정하여 많은 촌락을 파괴하고 가축을 빼앗았다. 그것은 모용씨가 세운 후연을 공략하기에 앞서 그 배후의 거란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백제를 다시 공격하여 여러 성을 함락한 후, 한강을 건너 백제의 수도에 육박하였다. 이에 백제가 굴복하고 일시적이나마 고구려에 복속하기를 맹세하여 고구려는 한강 이북의 땅을 모두 점령하였다. 또, 5만의 군사를 신라에 보내어, 당시 신라를 침입한 왜군을 낙동강 유역에서 물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