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7차 교육과정
  • 중학교 국사 7차
  • Ⅱ. 삼국의 성립과 발전
  • 2. 삼국의 발전
  • [2] 백제는 중흥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였는가?
  • 중흥을 위한 성왕의 노력

중흥을 위한 성왕의 노력

백제가 본격적인 중흥의 기반을 마련한 것은 6세기 중반 성왕 때였다. 성왕은 수도를 비좁은 웅진성에서 넓은 벌판인 사비성(부여)으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쳤다. 이 때, 중앙에 22개의 실무 관청을 두고, 수도에 5부, 지방에 5방을 두어 왕권의 강화를 꾀하였다. 그리고 불교를 장려하고, 중국과 문물을 교류하였으며, 왜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가져 불교를 비롯한 여러 문물을 전해 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성왕은 신라와 힘을 합하여. 이전에 고구려에 빼앗겼던 한강 유역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리하여 백제는 오랜 숙원을 한때 이루었으나, 곧 동맹국인 신라의 공격을 받아 한강 유역의 땅을 신라에 빼앗겼다.

이에 성왕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하였으나, 관산성(충북 옥천)에서 전사하여 중흥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삼국 간 세력다툼의 모습이 달라져, 백제는 고구려와 힘을 합해 동맹국이었던 신라를 상대로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였다.

관산성 전투

성왕이 이끈 백제군을 격퇴한 신라의 장군은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김무력이었다. 이 전투에서 백제군은 성왕을 포함하여 3만에 가까운 군사를 잃었을 정도로 참패하였다.
백제 금동 대향로와 출토 때의 모습(국립 부여 박물관 소장) | 충남 부여 출토
백제 금동 대향로와 출토 때의 모습(국립 부여 박물관 소장) | 충남 부여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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