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후, 당은 대동강 이남의 땅을 신라에게 준다는 약속을 어기고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신라에도 계림도독부를 설치하여 지배하려고 하였다.
이에 신라는 당군을 몰아 내기 위한 전쟁에 나섰다. 먼저, 신라는 백제의 옛 땅을 찾기 위해 고구려의 부흥 운동을 지원하였다. 고구려 유민들을 이용하여 당 침략군을 몰아 내려고 한 것이다. 신라는 고구려의 왕족 안승으로 하여금 금마저(전북 익산)에 보덕국이라는 나라를 세우도록 하였다. 아울러, 신라군은 당군이 주둔하고 있던 사비성을 함락하여 웅진 도독부를 없애고, 백제의 옛 땅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다.
그 후, 당군은 말갈군과 거란군을 앞세워 계속 침범하였으나, 신라는 장기간의 끈질긴 항쟁으로 이들을 물리쳤다. 신라군은 당의 20만 대군을 매소성에서 크게 물리쳐 군마 3만 마리와 많은 무기를 빼앗았으며, 당의 수군을 금강 하류 기벌포에서 격파하였다. 이렇게 당 침략군을 계속 물리친 신라는 드디어 대동강 이남 땅에서 당군을 완전히 몰아 냄으로써 통일을 이룩하였다(676).
신라의 삼국 통일은, 그 과정에서 중국 세력인 당의 도움을 얻었다는 점과 대동강 이남 지역에 한정되었다는 점에 한계가 있으나, 우리 역사상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비록 불완전하지만 우리 민족이 이룬 최초의 통일로서, 새로운 민족 문화를 이루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신라가 당의 야욕을 물리치고 통일을 완수하였다는 사실은 신라인의 자주적 성격을 보여 주는 것이다.
⋅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의 부흥 운동 ⋅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은 백제의 옛 땅에 웅진 도독부 등 5도독부를 두고 평양에는 안동 도호부를 두어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을 직접 지배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