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7차 교육과정
  • 중학교 국사 7차
  • Ⅲ. 통일 신라와 발해
  • 2. 신라의 동요와 후삼국의 형성
  • [1] 신라 말기에 지식인들과 지방 세력은 어떤 움직임을 보였나?
  • 흔들리는 신라 사회

흔들리는 신라 사회

통일 후 번영을 계속하던 신라는 8세기 후반부터 귀족들의 권력다툼에 휘말리게 되었다. 소수의 진골 귀족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왕과 귀족 사이에, 그리고 귀족들 서로 간에 싸움이 자주 일어났다. 귀족들이 농장을 늘리고 자신의 군대를 키워 서로 다투었지만, 국가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권력다툼은 혜공왕 때 시작되었다. 혜공왕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귀족들의 다툼이 시작되어 결국 혜공왕은 살해를 당하였다. 이로써 무열왕계의 왕위 세습이 끊어졌다. 이후 신라에서는 왕위다툼이 심해져서 150여 년 동안에 20명의 왕이 바뀌는 큰 혼란이 일어나 왕권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러한 때에 지방에서도 반란이 이어졌다. 9세기 전반에는 웅주(공주) 도독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켰고, 청해진을 지키던 장보고도 중앙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이 모두가 중앙에서 벌어진 왕위다툼과 관련하여 일어난 것이었다.

김헌창

무열왕의 후손으로서 내물왕의 후손인 원성왕과의 왕위다툼에서 패한 김주원의 아들로,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
성주사 터 전경과 이 곳에서 출토된 막새기와 | 충남 보령
성주사 터 전경과 이 곳에서 출토된 막새기와 | 충남 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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