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말, 농민들의 봉기는 신라의 거의 모든 지역을 휩쓸었다. 이러한 혼란을 틈타 세력을 크게 모으고 나라를 세우는 데 성공한 사람은 견훤과 궁예였다.
견훤은 상주 출신으로, 본래 서남 해안을 지키던 군인이었다. 때마침 전국 여러 곳에서 농민들이 봉기하여 나라를 뒤흔들자, 그는 황해안의 해상 세력과 도적 떼 등을 자신의 군사 기반으로 흡수하여 자립하였다. 견훤은 나주를 거쳐 무진주(광주)를 점령한 후 북상하여 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웠다(900).
궁예는 신라 왕족 출신인데, 중앙의 권력다툼에서 희생되어 신라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였다. 궁예는 처음에 양길의 부하로 있었으나, 점차 세력을 키워 자립한 후 강원도, 경기도 일대에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그는 이어 송악 지방의 왕건 부자를 포함한 중부 지역의 일부 호족들의 도움을 받아 송악을 근거지로 후고구려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다(901), 이리하여 신라는 분열되고 후삼국 시대가 열렸다.
⋅ 궁예는 왜 달라졌을까? ⋅
진성여왕 8년(894)에 명주(강릉)에 들어가, 거느린 무리 3500명을 14개 부대로 편성하고 …… 병졸과 더불어 괴로움과 즐거움, 어려움과 편함을 함께 하였고, 관직을 주고 빼앗음에 있어서도 공정하게 하여 사사로움이 없게 하였다. 이로써 뭇 사람들의 마음이 그를 두려워하고 존경하며 사랑하여 장군으로 추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