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7차 교육과정
  • 중학교 국사 7차
  • Ⅳ. 고려의 성립과 발전
  • 2. 무신 정권의 성립
  • [1]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은 왜 일어났는가?
  • 이자겸의 난

이자겸의 난

경원 이씨 일족은 왕실과 거듭된 혼인 관계를 맺으면서 가장 유력한 외척 가문이 되었다. 특히. 이자겸은 딸들을 예종인종의 왕비로 두어 최고의 권력자로 행세하였다. 이자겸은 왕실에서 많은 토지를 받은데다가 백성들의 토지까지 빼앗아 백성들의 원성이 매우 높았다. 이자겸의 권력은 국왕의 자리까지 넘볼 정도였다.

이에, 왕위 유지에 위협을 느낀 인종이 이자겸을 제거하려 하였으나, 도리어 이자겸의 반격을 받아 궁궐이 불타는 등 위기에 처했다. 이를 이자겸의 난이라 한다(1126). 그러나 얼마 후 인종은 이자겸의 부하인 척준경을 시켜 이자겸을 제거하였다.

대표적 문벌

⋅ 경원 이씨 - 이자겸
⋅ 해주 최씨 - 최충
⋅ 경주 김씨 - 김부식
⋅ 안산 김씨 - 김은부
⋅ 파평 윤씨 - 윤관
도움글

⋅ 이자겸의 생활 ⋅

이자겸은 경원 이씨로서 예종의 장인이요, 인종의 외조부였다. 당시 고려의 대표적인 외척 세력으로서 정치적으로 막강한 역할을 했던 그는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였다. 비슷한 때에 또 하나의 유력했던 가문 중의 하나가 경주 김씨인 김부식 가문이었다. 김부식의 아들인 김돈중 형제들도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였다. 그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재화를 모으고 향연 등을 열었다. 심지어 이자겸의 경우는 “뇌물이 공공연하게 행해져 사방에서 바치는 물건이 넘쳐 썩은 고기가 항상 수만 근이었고…….”라고 ‘고려사’에 전하고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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