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7차 교육과정
  • 중학교 국사 7차
  • Ⅳ. 고려의 성립과 발전
  • 2. 무신 정권의 성립
  • [1]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은 왜 일어났는가?
  •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이자겸의 난으로 왕실의 권위는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특정 가문이 정치를 독점하는 현상에 대한 반성의 기운도 일어났다. 또, 이자겸의 주도 아래 고려가 금과 사대의 예를 맺은 데 대한 불만도 상당하였다.

이 때, 서경 출신의 승려 묘청과 문신 정지상 등은 이러한 민심을 이용하여 인종에게 ‘고려를 황제국이라 칭하고, 독자의 연호를 사용하며. 금을 정벌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서경으로 수도를 옳길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인종은 이들의 말에 따라 서경대화궁이라는 궁궐을 짓고 자주 행차하였다.

그러나 개경의 정치 세력이 서경 천도에 반대하자, 묘청 등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1135). 이들은 나라 이름을 ‘대위국’이라 하고, 연호를 ‘천개’라 하였다.

묘청이 반란을 일으키자, 김부식을 사령관으로 한 중앙군이 서경을 공격하여 반란은 1년여 만에 진압되었다. 묘청 등의 서경 천도 운동개경 정치 세력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그러나 이 운동을 통해 당시의 민심이 문벌 세력의 정치적 독점에 대해 크게 반발하였으며, 고려인의 자주 의식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묘청

묘청서경 길지설을 내세우며 서경대화궁을 짓고 수도를 서경으로 옮길 것을 주장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난을 일으켰다.

정지상

서경 출신으로, 척준경을 몰아낸 공로로 출세하였다. 묘청과 함께 풍수지리설을 근거로 서경 천도를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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