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7차 교육과정
  • 중학교 국사 7차
  • Ⅳ. 고려의 성립과 발전
  • 3. 몽골과의 전쟁과 자주성의 회복
  • [1] 고려는 몽골의 침입에 어떻게 맞섰는가?
  • 몽골에 맞서 싸우다

몽골에 맞서 싸우다

고려와 몽골은 한동안 긴장 상태를 유지했으나, 결국 몽골의 침입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1231). 당시 고려는 백성들과 관군이 하나가 되어 몽골군에 맞서 싸웠다. 특히, 귀주성에서는 박서의 지휘 아래 몽골군에 맞서 끝까지 성을 지켰다.

충주 지방에서는, 몽골군이 침입하자 관리들은 도망했으나 관노비들은 끝까지 싸워 성을 지켰다. 정부에 반기를 들었던 초적들도 몽골군이 침입하자 맞서 싸웠다. 최씨 정권은 모든 주민이 섬이나 산성에 들어가서 몽골군에 항전하도록 하고,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겼다.

같은 해에 몽골군이 다시 침입했으나, 광주 주민들은 이에 맞서 몽골군을 격퇴했으며, 특히 처인성 전투에서는 김윤후와 처인 부곡민이 몽골군 사령관 살리타를 사살하였다. 이에 몽골군은 철수하였다.

몽골은 금을 정복한 후, 남송과 고려 정벌에 본격적으로 나서 여러 차례 고려에 침입하였다. 이 때에도 김윤후는 노비들과 함께 끝까지 충주성을 지켰다.

그러나 고려는 대구 부인사에 보관하고 있던 대장경의 판목과 경주황룡사 9층탑 등이 몽골군에 의해 불타는 피해를 입었다. 이에 최씨 정권은 민심을 모으고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기 위해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 조성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 사업은 16년간의 대역사 끝에 완성되었다. 팔만대장경판은 대몽 항쟁의 산물이며, 우리가 자랑하는 문화 유산의 하나이다.

박서

1231년 서북면 병마사로 있을 때 몽골 장수 살리타가 귀주를 공격하자, 한 달 동안의 격전 끝에 이를 물리쳤다.

팔만대장경의 조판

고종 23년(1236)에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제작하기 시작하여 고종 38년(1251)에 완성하였다. 부처의 가르침을 8만여 장의 나무판에 새겨 넣어서 팔만대장경판이라 한다. 팔만대장경판이 보존되어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은 1995년에 석굴암과 불국사, 종묘와 함께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읽기자료

⋅ 대장경의 판각 ⋅

옛날 현종 2년에 거란이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왔다. 현종은 남쪽으로 피란하였는데, 거란군은 송악성에 주둔하고 물러나지 않았다. 현종이 여러 신하들과 함께 크게 맹세하고 대장경판본을 새기니 거란군이 스스로 물러갔다. 대장경은 한가지이고, 그 때나 지금이나 그것을 새기는 일도 한가지이며, 임금과 신하가 함께 맹세한 것도 또한 같은 것이다. 어찌 거란 군사만 물러가고 지금의 몽골 군사는 물러나지 않겠는가? 오직 부처와 여러 천인(天人)이 얼마나 보살펴 주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동국이상국집
대몽 항쟁기의 강화도 일대
강화 산성 남문
처인성 승첩 기념비 | 경기 용인
대장경판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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