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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의 전파

천주교는 중국을 통해 우리 나라에 전해졌다. 중국에 간 사신들이 그 곳에 와 있던 서양인 선교사로부터 천주교에 관한 서적을 얻어 오면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천주교를 접한 양반들은 처음에는 서양 학문의 한 부분으로 이를 연구하였다. 그러던 중 정조 때에 몇몇 학자들이 신앙으로서 천주교를 믿기 시작하였고, 이승훈이 청에서 서양인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돌아온 뒤에 조선 교회가 창설되었다.

초창기에는 정권에 참여하지 못한 양반중인들이 주로 천주교를 믿었으나, 점차 서민층과 여성들도 믿게 되었다. 천주교 신앙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신도의 수가 크게 늘어나자, 정부는 천주교를 금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천주교가 유교의 제사 의식을 무시하였고, 천주교의 인간 평등과 내세 사상이 조선의 사회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정조 때에는 천주교를 심하게 금지하지는 않았으나, 순조가 즉위하면서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대대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천주교는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정치 부패와 사회 불안으로 서민들과 여성들 사이에 지속적으로 전파되어 교세가 크게 확대되었다.

신유박해(1801)

정조가 죽은 후 정권을 잡은 보수 세력은 천주교도와 진보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다. 이승훈, 이가환 등이 처형당하고, 정약용 등이 유배되었으며, 박지원, 박제가 등도 관직에서 쫓겨났다.
절두산 순교지 | 서울 마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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