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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학교 국사 7차
  • Ⅵ. 조선사회의 변동
  • 2. 세도 정치와 농민의 저항
  • [3] 천주교와 동학이 널리 퍼진 배경은?
  • 동학의 성립

동학의 성립

사회가 혼란하고 민심이 불안한 가운데 당시의 종교는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였다. 불교는 산중에 머물러 사회와 떨어져 있었고, 유교도 농민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 새로 전래된 천주교가 서민과 여성들 사이에 전파되고 있었으나, 서양 세력의 침략 위협으로 대외적 위기감이 높아 가고 있었던 데다가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였기 때문에 경계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러한 때에 경주 지방의 몰락한 양반최제우가 전통적인 민간 신앙과 유교, 불교, 도교를 융합하여 동학을 창시하였다. 그의 사상은 후에 ‘동경대전’, ‘용담유사’로 정리되었다.

동학은 서양 세력의 침략적 접근과 천주교의 전파가 우리 것을 해치고 우리 사회를 위태롭게 한다는 믿음에서, 우리 것을 지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동학 운동은 단순한 신앙 운동이 아니라, 어지러운 정치와 어두운 사회를 바로잡고 어려운 민중의 생활을 구제하려는 사회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동학서학, 즉 천주교로 대표되는 서양 세력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것이라는 등 반외세적인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동학이라는 이름도 서학천주교에 대항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었다. 동학의 교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인내천,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르면, ‘인심은 곧 천심이요, 사람을 섬기는 것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라 하였다. 이는 신분이나 계급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이 평등해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동학이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농민들에게 환영을 받은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동학은 이와 같은 교리를 바탕으로 하여 농촌 사회에 급속히 퍼져,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동학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는 종교라 하여 교조 최제우를 처형하고 동학을 탄압하였다.

동학의 중심 사상

인내천 사상, 현세 구복 사상, 후천 개벽 사상, 보국 안민 사상 등이 동학의 중심 사상이다.
읽기자료

동학의 창시 ⋅

몸이 매우 떨리고 추우며, 밖으로 신령에 접촉한 기운이 있고, 안으로 말을 내려 가르침이 있었으나,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았다. 마음으로 이상하게 여기고 의심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기(氣)를 바르게 하여 “어째서 그러합니까?” 하고 물으니, (한울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 사람들이 어찌 이것을 알겠는가? 하늘과 땅은 알면서 귀신은 알지 못한다. 귀신이라고 하는 것도 나다. 너에게 무궁무진한 도를 주노니, 닦고 단련하여 글을 지어서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법을 정하여 덕을 펴라. 그러면 너로 하여금 영생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라고 하셨다.
동경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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