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강화도에 군함을 보내어 위협적인 행동을 하면서 회담을 열자고 하였다. 조선 정부는 일본의 행위를 야만적이고 침략적이라고 비난하면서 그들과 대화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일부 관리들은 서양의 과학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과 통상을 하여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러한 대내외적 상황 속에서 강화도에 두 나라 대표가 모여 조약을 맺으니, 이것이 강화도 조약이다(1876).
강화도 조약은 우리 나라가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으로,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조약에 따라 조선은 부산, 원산, 제물포의 세 항구를 개항하고, 개항장의 일정 지역에 일본인이 거주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강화도 조약에서는 조선이 자주 국가임을 밝혔지만, 조선에 불리한 규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이 조선의 해안을 자유로이 측량하는 것을 허용하고, 치외법권을 인정하여 일본인들이 조선에 와서도 일본의 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 불평등한 내용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 후, 조선은 미국, 영국 등 서양 열강과도 차례로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여 문호 개방을 확대하고, 세계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서양 각국과 맺은 조약도 치외법권을 인정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미국과의 수교
청은 일본의 조선 침투와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과 미국의 수교를 알선하였다.강화도 조약(12개조)의 주요 내용
⋅ 조선국은 자주국이며, 일본국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