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2월에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3국 외상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한국에 임시 민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미⋅소 공동 위원회를 설치하고, 공동 위원회와 임시 민주 정부는 최고 5년간의 신탁 통치 협정을 만들 것을 결정하였다.
광복 후 독립 정부의 수립을 고대하던 우리 민족은 신탁 통치의 결정을 민족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민족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신탁 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위원회를 결성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반탁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처음에는 일부 공산주의자들까지 반탁 의사를 밝혀 단합의 계기가 마련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소련의 지령에 따라 곧 태도를 바꾸어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결정안을 지지하였다.
이처럼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의 결정을 놓고 남한에서는 민족주의 진영이 반탁 운동을 전개하고 공산주의 진영이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결정안 지지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좌우 대립이 치열해졌다. 한편, 북한에서는 반탁을 주장한 조만식이 소련군 당국에 의해 연금되고, 민족주의 진영의 반탁 운동은 금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