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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고사(上古史) - 제1편 부여족(扶餘族)의 창립과 한족(漢族)의 침입 시대
  • 제4장 삼한(三韓)과 예맥(濊貊), 옥저(沃沮)

제4장 삼한(三韓)과 예맥(濊貊), 옥저(沃沮)

삼한은 조선(朝鮮)의 남쪽에 위치하였으며,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일컫는다.

마한은 한반도의 서쪽에 위치하여 서⋅남⋅북 3면이 바다에 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변한⋅진한과 닿아 있었다. 총 54개국(國)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중 규모가 큰 나라는 1만여 가(家)이며, 작은 나라는 수천 가였다. 지금의 경기도⋅충청도⋅전라도 땅으로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애왕(哀王) 기준(箕準)이 수천 명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와서 자리 잡은 곳이다.

그의 아들인 무강(武康) 탁(卓)으로부터 왕위를 계승해 간 200여 년 동안 동전을 주조하고, 전토(田土)의 비옥하거나 황폐한 정도에 따라 3등급을 정하여 70분의 1을 세금으로 거두었으며, 오교원(五敎院)을 설치하여 오륜(五倫)의 도(道)를 가르치고 법률을 반포하였다. 왕학(王學)에 이르러 백제(百濟)에 의해 멸망당하였는데, 상대부(上大夫) 우정곡(宇定轂)은 순절하였고, 주근(周勤)은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십곡성(十谷城)에 웅거하여 봉기하였다가 백제에게 격파당하였다.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위치하여 북쪽으로는 예국(濊國)과 접하였고 남쪽으로는 변한과 맞닿아 있었다. 12개국이 있었는데, 지금의 경상도 땅이다. 삼한 중에서 지식(智識)이 더욱 개발(開發)되었고, 화폐[錢貨]를 만들어 주변 나라와 무역하였다.

변한은 진한의 남쪽에 위치하였는데, 진한과 마찬가지로 12개국이다. 지금의 경상도 남부인데, 진한의 사람들과 섞여 거주하였다.

삼한의 풍속은 대체로 비슷하였으나, 마한 사람들은 밭농사와 누에치기를 주로 하였고, 초가집에 토실(土室)을 만들어 살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서로 길을 양보하였으며, 노래와 춤을 즐겼다. 장례를 치를 때는 큰 새의 깃털을 사용하였는데, 그 의미는 죽은 자의 신혼(神魂)이 높이 날아오를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변한과 진한은 성곽과 의복이 서로 같았고, 언어와 집의 형태가 비슷하였다. 오직 변한 사람들만은 체격이 크고 머리를 아름답게 꾸몄으며, 의복이 청결하였다.

1)제목의 원문에는 예(穢)로 되어 있으나, 예(濊)로 바로잡는다.【지금의 춘천(春川)】와 맥(貊)【지금의 강릉(江陵)】은 곧 부여족(扶餘族)으로서 북쪽으로는 고구려(高句麗)⋅옥저와 인접하였고, 남쪽으로는 진한과 맞닿았으며, 동쪽으로는 큰 바다와 접하였고, 서쪽으로는 낙랑(樂浪)으로 이어졌다. 후에 한(漢)나라에 멸망당하였다.

동북 옥저(東北沃沮)【지금의 함경도 북부】는 토지가 비옥하여 오곡이 잘 익으며, 사람들의 성질이 강하고 용맹하여서 외부 세력에 쉽게 굴복하지 않았지만, 읍루(挹婁)의 침입과 노략질을 여러 차례 겪다가 고구려에게 멸망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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