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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고사(中古史) - 제2편 부여족(扶餘族)의 웅비(雄飛) 시대
  • 제2장 삼국의 전성 시대
  • 제1절 고구려(高句麗)가 무예를 떨치다

제1절 고구려(高句麗)가 무예를 떨치다

고구려의 유리왕(琉璃王)은 그의 신하 부분노(扶芬奴)의 적을 꾀어 내는 계책을 써서 선비족(鮮卑族)을 정복하고 한(漢)나라의 왕망(王莽)을 토벌하였다. 태신무왕(太神武王)1)고구려 3대 왕 대무신왕(大武神王)을 가리킨다.은 왕자 호동(好童)의 계책을 써서 낙랑(樂浪)을 멸망시키고, 부여(扶餘) 왕 대소(帶素)【주몽(朱蒙)의 형】를 공격하여 죽였으며, 그 땅을 모두 병합하였는데, 부여의 강역은 동쪽으로는 읍루(挹屢)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선비족과 접하였으며, 남쪽은 고구려와 맞닿았으니, 그 영역이 2천여 리였다. 한나라가 크게 병사를 일으켜 환도성(丸都城)으로 와서 포위하였으나, 을지두(乙智豆)의 기계(奇計)로 쫓아냈다. 모본왕(慕本王)은 한나라의 북평(北平)⋅어양(漁陽)⋅상곡(上谷)⋅태원(太原) 등지를 공략하여 차지하였다. 태조왕(太祖王)은 예(濊)와 맥(貊)의 사람들과 연합하여 한나라의 현도군(玄莵郡)2)‘玄莵郡’의 음가에 대해 현재 학계에서는 ‘현도군’으로 읽어야 한다는 입장과 ‘현토군’으로 읽어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 중앙 연구원]과 이병도의 역주 본에 따라 ‘현도군’으로 표기하였다.과 요동군(遼東郡)을 격파하고 화려성(華麗城)으로 진격하여 공격하였다. 신대왕(新大王)의 시대에는 한나라 현도군의 태수(太守) 경림(耿臨)이 대군을 거느리고 침공하여 왔는데, 명림답부(明臨答夫)가 성문을 닫아 걸고 굳게 지키다가 적군이 물러난 틈을 타서 분발하여 쳐서 크게 격파하니, 말 한 필도 살아 돌아간 자가 없었다.

동천왕(東川王)의 시대에는 지나(支那) 오(吳)나라 왕 손권(孫權)의 사신을 참수하고, 대가(大加)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공손연(公孫淵)을 요서(遼西) 지역에서 치게 하였으며, 지나(支那) 위(魏)나라 사람인 관구검(毌丘儉)이 환도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자 왕이 성을 도망쳐 나왔다. 이때 동부(東部) 사람 뉴유(紐由)가 위나라 진영에 가서 거짓으로 항복하여 위나라 장수를 척살하고 마침내 자신도 함께 죽으니, 위나라 군대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이에 왕이 세 갈래로 병사들을 진군시켜 위나라 군대를 섬멸한 후 다시 환도성으로 되돌아갔다. 중천왕(中川王)은 두눌곡(杜訥谷)에서 사냥하고 있을 때에 위나라 장수 위지해(尉遲楷)가 갑자기 공격하여 오자 정예 기병 5천 명으로 위나라 병사들을 크게 격파하여 8천여 명의 목을 베었다. 서천왕(西川王)의 시대에는 숙신씨(肅愼氏)【지금의 길림성(吉林省)】가 침입하여 와서 노략질을 하자 왕이 그 아우 달가(達賈)로 하여금 정벌하게 하여 숙신의 추장(酋長)을 죽였으므로, 여러 부가 몹시 두려워 떨었다. 고국양왕(故國讓王)은 병사 4만 명을 일으켜 요동군과 현도군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후 남녀 1만 명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광개토왕(廣開土王)은 18세에 즉위하여 세상을 뒤엎는[蓋世] 영웅으로서 당시의 형세를 잘 살피고 군사와 군마(軍馬)를 대거 육성하였다. 왕위에 있던 20년 동안 서쪽으로는 연(燕)나라의 모용성(慕容盛)과 모용희(慕容熙)의 무리를 공격하여 격파하였고, 북쪽으로는 무수한 부락과 나라를 아울렀으며, 동쪽으로는 신라(新羅)를 침공한 일본(日本)을 공격하여 신라를 구원하였다. 이처럼 분주하게 사방으로 정벌을 나섬에 따라 대항할 만한 적이 없어 동아시아의 전체 형세를 임의대로 조종하였으니, 동서고금(東西古今)에 광개토왕과 필적할 자는 오직 유럽[歐洲]의 판세를 좌우했던 절세의 영웅 나폴레옹[拿破崙] 한 사람뿐이다.

장수왕(長壽王)은 갈로(葛盧)와 맹광(孟光)3)원문에는 맹윤(孟允)으로 되어 있으나, 맹광(孟光)으로 바로잡는다.에게 명하여 병사 수만 명을 거느리고 가서 연나라 왕 풍홍(馮弘)을 구원하게 하였다. 양원왕(陽原王)의 시대에는 돌궐(突厥)【지금의 중앙아시아】이 침공하여 왔다가 패배하여 도망갔다. 평원왕(平原王)의 시대에는 지나(支那)의 주(周)나라 무제(武帝)가 대군을 거느리고 요동에 침입해 들어와 노략질을 하자 대장(大將) 우온달(愚溫達)이 맞서 싸워 크게 격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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