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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고사(中古史) - 제2편 부여족(扶餘族)의 웅비(雄飛)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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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절 정중부(鄭仲夫)와 이의방(李義方)의 난

제2절 정중부(鄭仲夫)와 이의방(李義方)의 난

인종(仁宗)이 돌아가시자[崩] 시독(侍讀) 정습명(鄭襲明)이 선왕의 유지(遺志)를 받아 의종(毅宗)을 옹립하고, 왕이 잘못을 할 때마다 지극하게 간언하여 바로잡았다. 이에 왕이 처음에는 정습명을 어려워하여 마음대로 굴지 못하다가 후에는 정습명을 참소(讒訴)하는 말을 믿어 그를 관직에서 파면시키니, 정습명이 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왕은 이때부터 거리끼는 것이 없어져서 음탕한 짓을 마음껏 하면서 옳은 말을 하는 관리[諫官]의 말을 듣지 않았으며, 환관(宦官) 정함(鄭諴)을 관직에 임용하여 백관(百官)을 핍박하였다. 또 이궁(離宮)을 건설하여 연못과 누대, 정자를 세우고, 아름다운 꽃과 괴이한 돌을 모아 두어 그 사치스러움이 극에 달하였으며, 시(詩)⋅부(賦)를 짓고 연회를 베풀며 노는 것을 매일 일삼았다. 시인 임종식(林宗植)⋅한뢰(韓賴)⋅김돈중(金敦中)의 무리를 총애하고 무신(武臣)들은 모질게 대하였다. 이에 대장군(大將軍) 정중부(鄭仲夫) 등이 분노하여 이의방(李義方)⋅이고(李高) 등과 더불어 난을 일으켜서 먼저 임종식⋅이기복(李基復)⋅한뢰⋅김돈중 무리를 죽이고, 문관(文官)의 관(冠)을 쓴 자는 모두 다 잡아 죽였다. 왕을 거제현(巨濟縣)으로 내쫓고 왕의 동생인 왕호(王皓)를 맞아 왕위에 올렸으니, 이가 바로 명종(明宗)이다. 이때에 동북면 병마사(東北面兵馬使) 김보당(金甫當)과 남로 병마사(南路兵馬使) 장순석(張純錫)⋅유인준(柳寅俊) 등이 전왕(前王)을 받들어 경주(慶州)로 옮겨 가게 한 후에 복위시키고자 하였으나, 끝내 김보당 등은 모두 패배하여 죽고, 이의민(李義旼)이 정중부의 명을 받아 왕을 경주에서 시해하였으며, 모든 관직에 무인(武人)들을 등용하였다.

그 후에 또 서경 유수(西京留守) 조위총(趙位寵)이 병사를 일으켜 정중부와 이의방을 토벌하고자 사방으로 격문(檄文)을 돌리니, 절령(岊嶺) 북쪽의 40여 성이 모두 호응하였다. 이에 윤인첨(尹鱗瞻)이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서경으로 진격하여 공격하였는데, 한 해가 넘어가자 조위총은 군량이 다 떨어지게 되었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금(金)나라에 귀부하기를 요청하였으나, 금나라 왕[主]이 이를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그 사신을 붙잡아 고려(高麗)로 보내니, 윤인첨 등이 드디어 서경을 함락하고 조위총을 참수하였다.

이보다 앞서 정중부의 아들 정균(鄭筠)이 이의방을 죽였으므로 정중부가 더욱 권력을 휘두르며 국정을 마음대로 하였다. 장군 경대승(慶大升)이 이를 한스럽게 여겨 죽음을 각오한 병사들을 이끌고 궁궐의 담을 넘어 들어가 정균의 목을 베고 정중부와 그의 당여(黨與) 송유인(宋有仁) 등을 붙잡아 주살하였다. 그러나 왕이 우유부단하여 무신들의 뜻을 한결같이 따랐으니, 상장(上將) 최세보(崔世輔)는 국사(國史)를 편수할 때에 무신들이 반역을 일으키고 왕을 시해한 죄를 엄폐하기까지 하였다. 이의민 역시 더욱 탐욕스럽고 포악하게 굴었으므로 장군 최충헌(崔忠獻)이 그의 동생 최충수(崔忠粹)와 더불어 이의민을 죽이고 3족(族)을 멸하였다. 이때부터 최씨(崔氏)의 위세와 권력이 날로 강성해지고 왕실은 대체로 쇠약하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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