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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장 몽고의 압제(壓制)와 배중손(裵仲孫)의 떨쳐 일어남

제1장 몽고의 압제(壓制)와 배중손(裵仲孫)의 떨쳐 일어남

고종(高宗) 때에 몽고(蒙古)가 여러 차례 침입하여 전쟁이 극심하였다가 부득이하게 단기 3574년(1241) 고종 28년에 종실(宗室) 영녕공(永寧公) 왕준(王綧)을 볼모로 보내었으니, 이때부터 몽고의 압제를 받게 되었다. 그 후에 몽고군이 수달을 잡는다고 하면서 고려(高麗)의 북계(北界) 지역에 들어와 노략질을 하므로 김방경(金方慶)으로 하여금 북계의 백성들을 섬으로 옮겨서 화를 피하게 하였다. 조휘(趙暉)와 탁청(卓靑)이 몽고군을 인도하여 와서 동북면 병마사(東北面兵馬使) 신집평(愼執平)을 죽이고 화주(和州) 북쪽 지역을 들어 몽고에 항복하자 몽고가 쌍성(雙城)【지금의 아령(俄領)과 송황령(宋皇嶺)】총관(摠管)을 설치하니, 고려가 이때부터 동북 지역의 여러 성을 빼앗기게 되었다. 고종이 돌아가시자 태자(太子)가 몽고에 갔다가 돌아와서 즉위하니, 그가 바로 원종(元宗)이다. 원종 때에는 몽고가 행성(行省)을 우리나라에 설치하고 탈타아(脫朶兒)를 다루가치[達魯花赤]로 임명하여 국정을 감독하게 하고, 몽고의 공주를 태자비(太子妃)로 삼았으며, 왕은 몽고에 가서 머무르게 하는 등 몽고의 압박이 날로 심해졌다.

장군 배중손1)원문에는 배중손(裴仲孫)으로 되어 있으나, 배중손(裵仲孫)으로 바로잡는다.과 노영희(盧永禧) 등이 떨쳐 일어나 삼별초(三別抄)를 이끌고 강화도(江華島)를 근거지로 하여 조정에 항거하자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 김방경이 가서 공격하였다. 이에 배중손이 바다를 건너 남쪽으로 가서 진도(珍島)에 들어가 근거지로 삼은 후 사방의 가까운 주현(州縣)을 공격하여 차지하고 추토사(追討使) 신사전(申思佺)를 쳐서 패배시켰다. 김방경이 또 군사 6천여 명을 거느리고 몽고의 원수(元帥) 아해(阿海)와 연합하여 진도를 공격하였다가 크게 패배하였으니, 배중손 군사의 기세가 매우 강성하였다. 이듬해에 몽고의 왕[蒙主]이 아해가 위축되어 나아가지 못함에 노여워하여 흔도(忻都)와 홍다구(洪茶丘) 등으로 하여금 병사들을 거느리고 가서 돕게 하니, 김방경이 흔도⋅홍다구와 더불어 좌군(左軍)과 우군(右軍)을 나누어 이끌고 가서 공격하였다. 배중손 등이 크게 맞붙어 싸우다가 패배하자 배중손의 무리인 김통정(金通精)이 남은 병사를 이끌고 탐라(耽羅)에 들어가서 험난한 지형에 의지하여 안팎으로 성을 쌓은 후에 바닷가 지역을 여러 차례 공략하였다. 이에 김방경이 또다시 흔도와 홍다구 등과 더불어 군사 1만여 명을 거느리고 와서 공격하므로 김통정이 힘써 싸우다가 군량(軍糧)이 다 떨어지고 화살이 고갈되자 김통정 이하 70여 명이 모두 자살하고, 남은 무리는 다 흩어져 버렸다.

대개 원종 이후 고려의 국가적 수치를 어찌 차마 말로 할 수 있겠는가? 국왕과 태자가 수도 개경[王京]에 있지 않고 연경(燕京)에서 머물렀고, 명령을 내려 시행하게 하는 권위가 정부에 있지 않고 원나라 황제[元主]에게 있었으며, 강토는 여러 차례 침탈을 당하였고, 백성들은 재물의 징발을 감당하기 힘들었으니, 이른바 국가라는 것은 비록 이름은 남았으나 실질적으로는 이미 망한 것이었다. 이처럼 큰 액운을 만나 강산이 적막하고 백성들이 초췌하여 졌는데도 3천리 반도 대국(大國)에 단 한 명의 열혈남아도 없다가 저 높은 하늘이 뜻하신 바가 있었기에 배중손과 김통정 두 사람이 칼을 들고 백성들의 울음소리 한가운데서부터 떨쳐 일어나 안으로는 꼭두각시와 같이 아무 의미 없는 정부에 반대하고, 밖으로는 횡포하고 잔학하기 그지없는 강한 외적을 섬멸하고자 하다가 외로이 떨어진 한 섬에서 구원병은 옴이 없이 피를 흘려 싸운 지 3년 만에 식량이 모두 고갈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 남은 힘만으로도 수만 명 적병의 목을 베었으나, 끝내 근거할 곳이 없어지고 기운이 다하자 70명의 장정들 중 한 사람도 항복하는 자가 없이 모두 칼날 위에 몸을 날려 죽었으니, 그 의열함이 과연 어떠한가? 이는 영구한 세월이 지나도 역사가들이 그들의 패배를 애도하고 그 의로움을 사모할 것인데도 역사에 무지한 무리가 도리어 하늘과 땅이 모두 용서하지 않을 만큼 대역무도로 충성과 절의가 있는 옛사람을 심히 무함하니 어찌 통분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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