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대동청사 1책
  • 근고사(近古史) - 제3편 학문의 부흥과 무예 쇠퇴의 시대[文興武衰時代]
  • 제6장 외적과의 관계
  • 제1절 최영(崔瑩)의 웅대한 계략

제1절 최영(崔瑩)의 웅대한 계략

이보다 앞서 장군 최영(崔瑩)이 원(元)나라가 쇠하여 어지러워진 틈을 타서 만주(滿洲)의 고구려(高句麗) 옛 영역을 회복하고, 원수와 같은 원나라를 멸망시켜 역대 선왕들에 대한 수치를 설욕하고자 대군을 일으켜 봉천부(奉天府)를 포위하였다. 비록 뜻이 잘 맞는 군왕을 만나지 못하여 일이 실패하였으나, 마음에 품은 뜻을 버리지 못하여 적절한 시기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후에 원나라가 망하고 명(明)나라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이 지나(支那)를 모두 차지하자 고려(高麗)에 토산물을 요구함이 그치지 않았고, 또 철령(鐵嶺) 북쪽의 땅은 원나라의 옛 땅이라고 하면서 여기에 철령위(鐵嶺衛)를 세워 명나라에 소속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최영이 크게 분노하여 왕 신우(辛禑)에게 권하여 명나라를 정벌하고자 하였으니, 이때가 단기 3721년(1388)이었다. 신우가 평양(平壤)에 이르러 병사들의 징발을 독려하고, 임시 다리를 압록강(鴨綠江)에 건설하였으며, 최영을 팔도 도통사(八道都統使)로 삼고 조민수(曺敏修)를 좌군 도통사(左軍都統使)로, 태조를 우군 도통사(右軍都統使)로 삼아 각각 장수들을 거느리고 출발하게 하였으니, 좌군과 우군을 합쳐서 모두 3만 8천여 명이었다. 이를 10만 대군이라 칭하고, 좌⋅우군이 위화도(威化島)【압록강 가운데에 있다.】에 진을 쳤다. 원수(元帥) 홍인계(洪仁桂)가 먼저 요동(遼東)의 변경 지역에 들어가니, 적군의 목을 베거나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다. 그러한 후에 장마로 인해 큰 비가 내리므로 태조께서 도성으로 돌아와 신우를 폐위하고 신창(申昌)을 왕으로 세웠으며, 최영을 유배 보냈다.

호두장군(虎頭將軍) 최영이 세상을 뒤덮을 웅대한 계략을 가슴에 품고 지나(支那)의 큰 판국을 곁눈질하면서 400년 전 부여족(扶餘族)의 옛 강역을 다시 회복하고자 하였다가 시기가 불리하여 끝내 큰 계획을 펼치지 못하였으니, 어찌 한탄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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