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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고사(近古史) - 제3편 학문의 부흥과 무예 쇠퇴의 시대[文興武衰時代]
  • 제16장 4색 당파(黨派)의 분쟁(分爭)
  • 제2절 왕비 민씨(閔氏)[閔后]의 폐출(廢黜)과 신임(辛壬)의 난

제2절 왕비 민씨(閔氏)[閔后]의 폐출(廢黜)과 신임(辛壬)의 난

숙종(肅宗)께서 왕위를 이을 후사(後嗣)가 없으시다가 소의(昭儀) 장씨(張氏)가 경종(景宗)을 낳자 곧 세자[東宮]로 책봉하시고 장씨를 희빈(嬉嬪)으로 봉하셨다. 이에 송시열(宋時烈)과 김수항(金壽恒) 등이 상소하여 세자를 서둘러 책봉한 일에 대해 간언하자 숙종께서 크게 노하셨는데, 이현기(李玄紀) 등이 이때를 틈타 왕에게 권하여 송시열을 유배 보내고, 김수항에게 사약(死藥)을 내려 죽게 하였다. 목내선(睦來善)과 김덕원(金德遠)이 좌의정(左議政)과 우의정(右議政)이 되어 남인(南人)을 크게 등용하고 서인(西人)을 모두 축출하였다. 그 후에 숙종께서 장씨를 왕비로 책봉하고 왕비 민씨를 폐위하시자 오두인(吳斗寅)⋅박태보(朴泰輔)⋅이세화(李世華) 등 80여 명이 상소를 올려 간쟁하였다. 이에 왕이 노여워하며 오두인 등을 친히 심문하셨는데, 박태보의 언변이 더욱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참혹한 형벌을 받고도 굴복하지 않다가 죽었고, 오두인⋅이세화 등은 모두 유배를 당하면서 서인의 세력이 더욱 미약해졌다. 남인이 이때를 타서 송시열을 죽이고 김석주(金錫胄) 등의 보사훈(保社勳)을 삭제하니, 남인과 소론(少論)의 세력이 더욱 확장되었다.

그 후에 왕이 왕비를 폐위한 일을 후회하고 남인을 달가워하지 않아서 장씨를 폐위하고 민씨를 복위시켰으며, 송시열과 김수항의 관작(官爵)을 회복시키고 오두인⋅박태보를 추증하였으며, 민암(閔黯) 등을 죽였다. 그 후에 왕비 민씨가 돌아가시고[崩] 장희빈이 민씨를 저주한 일이 발각되자 왕이 크게 노하시어 장씨에게 사약을 내려 죽게 하시고, 장씨의 오빠 장희재(張希載)와 그밖에 연루된 자들을 주살하고 남인을 모두 축출하니, 노론(老論)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숙종께서 돌아가시고 경종이 즉위하셨으나, 병이 있으셔서 대를 이을 후사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이에 재상(宰相) 김창집(金昌集)⋅이건명(李健命)⋅이이명(李頤命)⋅조태채(趙泰采) 등이 정언(正言) 이정소(李廷熽)의 상소로 인하여 왕의 동생 연잉군(延礽君)【영조(英祖)】을 세자로 책봉하게 하였다. 집의(執義) 조성복(趙聖復)의 상소로 말미암아 세자로 하여금 정사를 돌보게 하려고 하였는데, 소론 유봉휘(柳鳳輝)⋅조태구(趙泰耉)⋅최석정(崔錫鼎)⋅최규서(崔奎瑞)⋅이광좌(李光佐) 등이 이를 배척하여 서로 다투었다. 이때 목호룡(睦虎龍)이 반역을 고발하기를 이이명 등이 역모를 꾀한다고 하여 이이명⋅김창집 등 수십 명을 죽이고, 노론을 모두 직위에서 쫓아내고 소론이 정권을 잡았다. 이 일이 경종 원년(1721) 신축(辛丑)에 시작되어 이듬해 임인년(壬寅年)까지 이어졌던 까닭에 신임사화(辛壬士禍)라고 하였다.

얼마 후에 경종이 돌아가시고 영조가 즉위하시자 이이명과 김창집 등 임인년의 옥사(獄事)에서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고, 목호룡 등을 죽이고 유봉휘⋅조태억(趙泰億) 등을 내쫓았으며, 노론과 소론을 평정함으로써 탕평(蕩平)을 이루고자 하여 양쪽을 모두 화합하게 하셨다. 그러나 영조 4년(1728) 무신(戊申)에 김일경(金一鏡)의 남은 당여(黨與) 이인좌(李麟佐)가 충청도에서 병사를 일으키고, 정희량(鄭希亮)은 경상도에서 병사를 일으켰다. 또 평안 병사(平安兵使) 이사성(李思晟)과 금군 별장(禁軍別將) 남태징(南泰徵) 등이 안팎에서 호응하여 종실(宗室)인 밀풍군(密豊君) 이탄(李坦)을 추대하여 역모를 일으켜서 충청 병사(忠淸兵使) 이봉상(李鳳祥)과 영장(營將) 남연년(南延年)을 습격하여 죽이고, 북쪽으로 진격하여 안성(安城)에 이르자 도순무사(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이 가서 토벌하였다. 그 후에 또 세자를 저주한 일로 이인좌의 남은 당여 정사효(鄭思孝) 등을 죄를 물어 죽였고, 이광좌를 파직하고 이미 죽은 조태구⋅유봉휘 등의 관작(官爵)을 깎아 없앴다. 영조 31년(1755) 을해(乙亥)에는 윤지(尹志)⋅이하징(李夏徵) 등이 역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죄를 물어 죽었으므로, 남인과 소론의 세력이 점점 쇠약해지고 노론이 정권을 잡게 되었다. 영조께서 4색의 당파(黨派)를 탕평하고자 하셔서 같은 당 내에서 혼인 관계를 맺는 것을 금지하셨고, 김재로(金在魯)【노론】와 조문명(趙文命)【소론】 등이 서로 탕평하고자 하여 힘을 다하였으나, 100여 년 이래의 굳은 관습이 버릇이 되고 원수가 잇닿아 있었기에 실질적인 효과가 없었으므로 마침내 동실(同室)끼리 서로 원수가 되어 혈족끼리 서로 다투고 싸우다가 국가의 운세가 점점 약해지게 되는 운세를 빚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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