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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 원년(1469)

기축 원년(己丑元年, 1469)에 유자광(柳子光)이 ‘남이(南怡) 등이 혜성(彗星)을 보고 제구포신(除舊布新)1)『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따르면, 진 효공(秦孝公) 8년에 혜성이 나타난 이후 삼대(三代) 성인의 좋은 법과 아름다운 뜻이 진나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은 혜성의 등장을 역모나 재앙이 일어나 제구포신, 즉 옛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펼쳐질 조짐으로 보았다.의 조짐이라고 말했다.’는 것으로 죄를 날조하여 죽였다.

여름 5월 검은 매화나무[烏梅]로 만든 표신(標信, 궐문을 드나들 때 지녔던 신분증)이 많이 분실되었고 복제하기 쉬웠기[易奸] 때문에 처음으로 상아(象牙)를 이용하여 [표신을 만들었다.] 국왕의 표신은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 앞면에는 ‘선전(宣傳)’이라는 글자를 쓰고 뒷면에는 어압(御押, 임금의 수결을 새긴 도장)을 찍었다. 대비전(大妃殿)은 사각형 모양으로 만들어 앞면에 ‘의지(懿旨)’라는 글자를 새기고, 뒷면에는 어압을 찍었다. 중궁전(中宮殿)은 모양을 날카롭게 하여[銳] 앞면에는 ‘내지(內旨)’라는 글자를 새기고 뒷면에는 어압을 찍었다. 세자궁(世子宮)은 그 모양을 곧게[直] 하여 앞면에는 ‘휘지(徽旨)’라는 글자를 새기고, 뒷면에는 어압을 찍었다. 이후 궁궐의 문에 처음으로 모두 자물쇠를 채웠다.

6월 환조(桓祖,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 이하의 영정(影禎) 33함(函)을 선원전(濬源殿)에 봉안하였다. 한성 부윤(漢城府尹)을 판윤(判尹)으로 고쳤다.

7월에 우의정(右議政) 윤자운(尹子雲)에게 명하여 성밖에 있는 종각(鍾閣)을 성안으로 옮겨 설치하였다. 5부(五部)를 고쳐 오위(五衛)로 삼았는데, 중부(中部)는 분용위(奮勇衛)로, 동부(東部)는 효건위(驍健衛)로, 서부(西部)는 무소위(武昭衛)로, 남부(南部)는 충건위(忠建衛)로, 북부(北部)는 파로위(破虜衛)라고 칭하였다.

9월에 『경국대전(經國大典)』이 완성되었다.

11월에 왕께서 선왕(先王)의 대상(大喪)을 맞아 초가집으로 된 막차[廬次]에 계속 거처하시면서 슬퍼하셨는데, 이에 병을 얻어서 돌아가셨다. 자산군(者山君)이 근정문(勤政門)에서 즉위하시니 이때 나이가 13세였다. 왕대비(王大妃)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셨는데, 내시(內侍)에게 관직을 제수하는 것을 4품을 넘지 않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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