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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16년(1583)

16년(1583)에 경원(慶源), 종성(鍾城), 회령(會寧) 등 진(鎭)의 번호(藩胡)1)강 건너 가까이 살며 무역을 하고 공물을 바치던 오랑캐를 말한다.가 난을 일으켰다. 온성 부사(穩城府使) 신립(申砬)이 추격하여 그 부락을 공격하여 오랑캐들이 사는 장막을 모두 불태웠다. 북병사(北兵使) 이제신(李濟臣)도 반란을 토벌하여 300여 명의 목을 베었다.

병조 판서(兵曹判書) 이이(李珥)의 주청으로 자원하여 변경에 나가 3년 동안 지킨 사람은 서얼이라도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주고[許通], 천인(賤人)은 양민(良民)으로 면천하고[許良], 변경에 쌀을 바친 자 역시 허통(許通)하였다. 병조(兵曹)의 군사가 번(番)에서 제외되는 대신 바치는 포(布)를 모두 이용하여 변경으로 보내 필요한 군수에 쓰도록 도와주고, 군자감(軍資監)의 포(布)로 전쟁에서 싸우는 군사의 옷을 만들며, 백관(百官)의 녹봉을 줄여 변방을 지키는 군사들의 처자에게 지급하였다. 이에 적호(賊胡)가 여러 번 꺾이고 번호가 성심으로 복종하였다. [그러나] 율보리(栗甫里)와 니탕개(尼湯介)는 심처(深處, 오랑캐 중 귀부하지 않은 자들)로 도망가서 변계(邊界)를 계속 침략하였다. 이에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사수(射手)를 뽑는데, 군대가 출발하는 날에 임박하여 이이가 한편으로는 뽑힌 병사 중 1등 초병(抄兵)은 변경을 방비하고 2등과 3등은 말을 바치게 하는 대신 변경으로 가는 것을 면제하자는 뜻으로 [임금께] 청을 올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왕의 답변이 내려오기도 전에 임의로] 명령을 내려 [바치는 자를 모집하게 하였다.] [한편, 얼마 후] 임금께서 이이를 부르셨는데, 이이는 궐로 향하는 길에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났다는 이유로 [임금을 뵈러 가지 않고] 내조(內曹)의 숙직실로 들어가 버렸다. 대사헌(大司諫) 송응개(宋應漑), 옥당(玉堂) 허봉(許篈), 대사헌(大司憲) 이기(李墍) 등이 이이가 [지난번 말을 바치는 자들에겐 변방 방어를 면제해 주겠다는 것은 군정(軍政)에 관계되는 중한 일인데도 왕께] 아뢰지 않고 마음대로 시행한 죄와 [임금의 부름에] 현기증을 핑계로 오지 않은 죄를 들어 연달아 탄핵하였다. 이 일로 이이가 파주(坡州)로 물러났다.

호군(護軍) 성혼(成渾)이 왕자 사부(王子師傅) 하락(河洛)과 성균 생원(成均生員) 유공진(柳拱辰) 등 460여 명과 함께 상소하여 이이의 억울함을 대신 호소하였다. 도승지(都承旨) 박근원(朴謹元) 등이 [그들의 상소]를 따져 의논한 뒤 물리치니, 왕께서 송응개, 허봉, 박근원 등의 관직을 모두 삭탈하고 멀리 유배 보내셨다. [이이가 다시 판돈령(判敦寧)으로 출사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판돈령 이이가 해주(海州)로 다시 물러났다. 임금께서 [다시] 이이를 불러 이조 판서(吏曹判書)로 제수하셨다. [이이는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 사은(謝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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