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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30년(1597)

다음 해(1597) 봄 정월 명(明)나라에서 석성(石星)을 하옥하였고, 심유경(沈惟敬)을 붙잡아 갔다. 양호(楊鎬)를 경리(經理)로, 형개(邢玠)를 총독(摠督)으로, 마귀(麻貴)를 제독(都督)으로 삼아 군사 1만 2천 명을 거느리고 조선에 와 구원하였다.

가을 7월에 왜병[日兵]이 수군을 급습하여 통제사(統制使) 원균(元均), 수사(水使) 이억기(李億祺), 최호(崔湖) 등을 모두 죽였다.

8월에 안음(安陰)의 황석산성(黃石山城)이 함락되었다. 현감(縣監) 곽준(郭䞭)과 두 아들 곽이상(郭履常), 곽이후(郭履厚)가 해를 당하고, 곽준의 딸은 남편 유문호(柳文虎)가 인질이 되었음을 듣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전(前) 함양 군수(咸陽郡守) 조종도(趙宗道)가 ‘공동산 밖의 생활도 즐거웠지만, 장순⋅허원처럼 성을 지키다 죽는 것도 영광일세.’라는 시를 짓고 곽준과 함께 죽었다.

9월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소 요시토시[宗義智] 등이 남원성(南原城)을 포위하니 명나라 총병 양원(楊元)은 간신히 몸을 피하고, 총병 중군(摠兵中軍) 이신방(李新芳)과 천총(千摠) 장표(蔣表), 모승선(毛承先)과 우리나라 사람 정기원(鄭期遠), 이복남(李福男), 오응정(吳應井), 김경로(金敬老), 신호(申浩), 임현(任鉉), 이덕회(李德恢), 이원춘(李元春) 등은 모두 죽었다. 명나라 장수 양호가 총병 해생(解生) 등을 시켜 왜병을 직산(稷山)의 소사평(素沙坪)에서 크게 격파하였다.

겨울 11월에 양호, 마귀가 남하하여 경상도(慶尙道)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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