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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즉위년(1608)

선왕이 죽음 직전에 세자를 불러 말씀하시길 “동기(同氣)를 내가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하라.”고 하시고, 내전(內殿)【인목 대비(仁穆大妃) 김씨(金氏)】에게 밀봉한 편지[封書]를 내리셨다. 편지의 겉에는 유영경(柳永慶), 한응인(韓應寅)1)원문에는 한응실(韓應實)로 되어 있으나, 한응인(韓應寅)으로 바로잡는다., 신흠(申欽), 허성(許筬), 박동량(朴東亮), 서성(徐渻), 한준겸(韓浚謙)2)원문에는 한준겸(韓俊謙)으로 되어 있으나, 한준겸(韓浚謙)으로 바로잡는다.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안쪽에는 “대군(大君)【영창 대군(永昌大君) 이의(李㼁)】이 아직 어려서 장성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바라건대 그대들은 [혹시 모를 일이 생길 경우] 대군을 애호하여 도와주길 바란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이첨(李爾瞻)과 정인홍(鄭仁弘)이 [선조가] 7명의 신료들에게 내린 고명(顧命, 임금이 신하에게 유언으로 뒷일을 부탁함)은 대비가 [내시] 민희건(閔希騫)을 사주하여 선왕의 유명(遺命)을 위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헌납(獻納) 유화(柳話)로 하여금 앞장서서 그들의 죄를 탄핵하게 하여 먼 곳으로 귀양 보냈다. 유영경을 경흥(慶興)에 안치(安置)한 후 사사(賜死)하였고, 임해군(臨海君) 이진(李珒)을 강화도(江華島) 교동(喬桐)에 귀양 보낸 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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