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 14년(丙子十四年, 1636) 봄 3월에 청(淸)나라 사신이 한(汗)을 받들어 함께 황제로 추대하자고 청하기 위하여 왔다. 장령(掌令) 홍익한(洪翼漢), 교리(校理) 윤집(尹集), 오달제(吳達濟)가 [그러한 부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들과] 척화(斥和)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청이 대군을 이끌고 국경을 침입하니 의주 부윤(義州府尹) 임경업(林慶業)이 치계(馳啓)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대신(大臣) 윤방(尹昉), 김상용(金尙容) 등이 종묘와 사직의 신주, 빈궁(嬪宮), 원손(元孫), 봉림 대군(鳳林大君)【효종(孝宗)】, 인평 대군(麟坪大君)을 모시고 강도(江都, 강화도)로 들어갔고, 왕께서는 동궁(東宮, 세자)과 함께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가셨다. 29일에 별장(別將) 신성립(申誠立), 지여해(池汝海), 이원길(李元吉) 등이 전사(戰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