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해(1691) 가을에 왕께서 직접 율시(律詩) 한 수를 써서 승정원(承政院)에 내리셨다. 그 시에 이르기를, “예전부터 나라를 어지럽힘은 붕당보다 혹독한 것이 없는데, 동서가 겨우 주장을 내세우자 노소가 바로 마구 헐뜯어대어, 공도는 때로 아주 없어지고 사심이 날로 이어 붙어 있으니, 모름지기 은감이 가까운 줄 알아서 끝내 충성의 힘 다하여야 하리라.” 하였다.
12월에 성삼문(成三問) 등 죽은 6명의 신하들 관작을 회복하고, ‘민절(愍節)’이란 사액(祠額)을 하사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