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 원년(乙巳元年, 1725)에 죄인에게 압슬(壓膝)을 가하는 형벌을 없앴다. 경의군(敬義君)【진종(眞宗)】을 왕세자(王世子)로 책봉하였다. 고(故) 영의정(領議政) 김창집(金昌集), 좌의정(左議政) 이이명(李頤命), 이건명(李健命), 우의정(右議政) 조태채(趙泰采) 및 고(故) 판서(判書) 이만성(李晩成) 등 여러 신하의 관작(官爵)을 모두 회복시켰다. 서호(西湖)에 사충사(四忠祠)와 숭절사(崇節祠)를 건립하여 진(晉)나라의 태학생(太學生) 동양(董養), 당(唐)나라의 태학생 하번(何蕃), 송(宋)나라의 태학생 진동(陳東), 구양철(歐陽徹)을 배향하여 사현사(四賢祠)로 사액하셨다. ‘유방아동(流芳我東,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명성을 남기시다’라는 뜻)’ 네 글자를 써서 걸라고 명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