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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18년(1742)

다음 해(1742)에 왕께서 ‘원만하여 편벽되지 않음이 곧 군자의 공심(公心)이요, 편벽되고 원만하지 않음이 바로 소인의 사의(私意)다.’라는 글을 쓰시고 비석에 새기게 하여 태학(太學)에 있는 다리 위에 세우라고 명하셨다. 국가가 난을 겪은 후에 [악기가 흩어지고 없어져] 생(笙), 소(簫), 관(管), 금(琴)이 모두 갖추어지지 않았다. 이때 이르러 마침 사직(社稷)의 악기 창고 및 비변사(備邊司)의 우물에서 석경(石磬) 24매(枚)를 얻었다. [이에 왕께서 아악을 다시 새롭게 할 뜻을 품으시고 재자관(齎咨官)을] 북경(北京)에 보내 생황(笙簧) 만드는 법을 사 오도록 하고, 또 장악원 정(掌樂院正) 이연덕(李延德)에게 명하여 악기를 상고하여 바로잡도록 하셨다. 교서관(校書館)에게 명하여 세조(世祖)가 직접 지으신 『병장도설(兵將圖說)』을 간행하였다. 훈신(勳臣)의 후예(後裔)는 9대(九代)까지 충의위(忠義衛)로 배정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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