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 38년(壬午三十八年, 1762) 여름 윤5월에 왕세자가 창덕궁(昌德宮)에 계셨는데 동궁(東宮) 액례(掖隷) 나경언(羅景彦)이 세자가 매번 궁궐 밖으로 나간다고 무고(誣告)하였다. 왕께서 성문(城門)을 닫으라고 명하신 후 추국(推鞫)을 실시하셨다. 영의정(領議政) 홍봉한(洪鳳漢)이 나경언이 고한 변서(變書)를 조목에 따라 따져 물은 결과 모두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경언을 복주(伏誅)하였다. 이 달 5일에 왕세자가 승하하시니, 채제공(蔡濟恭)이 최복(衰服) 차림으로 궐에 와서 가슴을 치며 하늘을 향해 부르짖는 것을 10일 동안 하였다. 왕께서 세자에게 ‘사도(思悼)’【정조(正祖) 때 장헌(莊獻)으로 추상(追上)】라는 시호를 내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