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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50년(1774)

50년(1774)에 세손(世孫)이 외종조부 홍인한(洪麟漢)의 탐학(貪虐)하고 무식(無識)함을 일찍이 비루하게 여겨 안색을 좋지 않게 하자 홍인한이 이에 앙심을 품었다. 화완 옹주(和緩翁主)【영조(英祖)의 아홉 번째 딸】의 후자(後子) 정후겸(鄭厚謙)이 그 어미와 함께 왕의 어묵(語默)을 엿보아 위엄과 은혜를 베풀었는데, 홍인한이 그들에게 붙어 홍지해(洪趾海), 윤양후(尹養厚)와 함께 근거 없는 소문을 만들어 세손을 모함하여 흔들었다. 왕께서 [병환을 이유로] 세손으로 하여금 대신 정사를 보게 하신다는 하교가 내려지자, 홍인한은 온갖 꾀를 내어 저지하고 방해하였다. 왕께서 “내가 보는 것이 어두워 정망(政望)을 점하(點下)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중관(中官, 내관)에게 대신하도록 하였는데 만에 하나라도 [그가 내 뜻을] 전도(顚倒)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어찌 알아차리겠는가.”라고 하셨다. 영의정(領議政) 한익모(韓翼謩)가 “성명(聖明)이 위에 계심을 이들은 근심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세손으로 하여금 대신 정치를 듣게 하겠다는 왕의 하교는 위아래에서 서로 반대하며 버티는 바람에 10여 일이 지나도 반포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전(前) 참판(參判) 서명선(徐命善)이 상소를 올려 홍인한과 한익모를 탄핵하니 왕께서 영부사(領府事) 김상복(金相福)과 대사헌(大司憲) 송영중(宋瑩中)을 부르셔서 서명선이 올린 상소의 옳고 그름을 물으셨다. 송영중은 “너무 꼬치꼬치 따진 글[深文]”이라 하고, 김상복은 “모호하다.”라는 것으로 대답하였다. 왕께서 한결같은 혈충(血忠)이라며 서명선을 칭찬하시고, 한익모와 홍인한, 그리고 김상복, 송영중의 관직을 모두 삭판(削版)하라 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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