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국조사
  • 광해군(光海君)-순종(純宗)
  • 영조조(英祖朝)
  • 영조 52년(1776)

영조 52년(1776)

다음 해(1776)에 ‘효손(孝孫)’ 두 글자를 친히 쓰셔서 호조(戶曹)로 하여금 은인(銀印)을 주조하게 하셨다.

봄 3월 5일 병자(丙子)에 왕께서 승하하셨다. 왕세손(王世孫)이 경춘전(景春殿)에서 즉위하시고, [선왕을] 양주(楊州) 원릉(元陵)에 장사하셨다. 영상(領相) 김상로(金尙魯)는 임오(壬午, 1762)년의 일로 역률(逆律)을 추시(追施)하고, 김상로의 며느리는 고(故) 판서(判書) 이재(李縡)의 손녀로 현인(賢人)의 후손이다. 따라서 노비로 삼아 정배(定配)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문성국(文聖國)은 그 누이 문소의(文昭儀, 영조의 후궁)가 아이를 잉태했을 때에 양인(良人)의 아들을 몰래 구하여 적자(즉 사도 세자)의 지위를 빼앗고자 몰래 도모하는 것에 함께 참여하였기 때문에 극형에 처한 뒤 그 처자들을 연좌시켜 노비의 적(籍)에 올렸다. 문녀(文女) 및 홍인한(洪麟漢), 정후겸(鄭厚謙)은 사사(賜死)하였고, 윤양후(尹養厚)는 경폐(經斃)하고, 이상로(李商輅)와 심상운(沈翔雲)은 목을 베어 죽였다. 송시열(宋時烈)을 효종(孝宗)의 묘정(廟庭)에 추배(追配)하고, 규장각(奎章閣)을 내원(內苑)에 세우셨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