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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2년(1778)

다음 해(1778)에 고(故) 상신(相臣) 김창집(金昌集)을 영조(英祖)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하였다. 대왕대비(大王大妃)【영조의 정순 왕후(貞純王后) 김씨(金氏)】가 언교(諺敎)를 대신들에게 내려 빈어(嬪御, 임금의 첩)의 자리에 앉힐 사족(士族)을 간택하여 왕세자 자리를 안정시키라고 명하셨다. 이에 헌납(獻納) 박재원(朴在源)이 상소를 올려, ‘신은 곤전(坤殿, 중궁) 전하의 환후가 어떠한 증상이어서 자손을 생산하시고 기르시는 데 지장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훌륭한 의원을 널리 맞이하고 좋은 약재를 두루 써 보신다면 어찌 효력이 없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때 홍국영(洪國榮)의 누이【홍낙춘(洪樂春)의 딸】가 빈(嬪) 선발에 응한 상태였다. 홍국영이 박재원이 올린 상소의 내용을 듣고 화가 나 공석에 앉아서도 그에 대해 욕을 하며, 사실 무근의 말로 그를 모함하려고 하였다. [다행히] 왕께서 박재원의 충성을 깊이 살피셨으므로 [죄를 주지 않으셨고, 그가 사망한 후에] 특별히 부제학(副提學)으로 추증(追贈)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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