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국조사
  • 광해군(光海君)-순종(純宗)
  • 정조조(正祖朝)
  • 정조 9년(1785)

정조 9년(1785)

9년(1785)에 제주(濟州)의 삼성묘(三姓廟)에 편액을 하사하셨다. 문선공(文宣公) 문익점(文益漸)을 모시는 서원에 편액을 하사하시고, 그를 강성군(江城君)에 추봉(追封)하였다. 용천(龍川)에 있는 신도(薪島)로 와서 살고 있는 청(淸)나라 사람들을 지방관(地方官)이 쫓아냈다. 진역(疹疫, 홍진)이 크게 유행하여 한양과 지방[京外]의 드러난 해골을 묻는 것이 모두 37만 979군데였다. 구선복(具善復)이 홍국영(洪國榮)을 통해 상계군(常溪君) 이담(李湛)을 유인하여 법과 도리(道理)에 어긋나는 것을 모의하였다. 구성복은 형벌을 받아 죽었고, 이담은 추탈(追奪)되었으며, 이담의 부친 은언군(恩彦君) 이인(李䄄)은 강화(江華)에 안치(安置)되었다.1)홍역이 유행한 것 이후의 기사가 일어난 해는 정조 9년(1785)이 아니라 정조 10년(1786)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