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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11년(1787)

다음 해(1787)에 원춘 감사(原春監司) 김재찬(金載瓚)의 말을 따라 순안현(順安縣) 관아에 인원 왕후(仁元王后)【숙종(肅宗)의 왕후 김씨(金氏)】가 손수 심으신 밤나무에 각(閣)을 세워 소중히 받들어 ‘율원정(栗園亭)’이란 편액을 달았다. 임금이 잠깐 쉬시는 방의 벽지가 점점 검게 변하였고, 기둥의 서까래도 썩고 상하였기 때문에 연신(筵臣, 경연에서 경전을 강론하는 신하)이 교체할 것을 청하였으나, 왕께서 “비가 계속 내리는 것이 열흘이 넘어 보잘것없는 가난한 집들이 갈라지고 무너지는 것이 마음이 아프니 그만두라.”라고 하셨다. 장진진(長津鎭)을 부(府)로 승격하였으며, 조선 왕조의 기원이 시작된 지역에는 기적비(紀蹟碑)를 세우셨다. 덕원(德源) 용주리(湧珠里)는 목조(穆祖, 이성계의 고조부)의 집터이고, 경흥(慶興)의 적도(赤島)는 익조(翼祖, 이성계의 증조)의 도차(陶次)며, 적지(赤池)는 도조(度祖, 이성계의 조부)가 용(龍)을 쏘아 왕업을 세운 곳이고, 함흥(咸興) 귀주동(歸州洞)은 환조(桓祖, 이성계의 아버지)가 거처하셨던 곳이자 정종(定宗)과 태종(太宗)이 태어나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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