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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14년(1790)

다음 해(1790)에 영풍군(永豊君) 이전(李瑔)【세조(世祖)의 동생】의 묘석(墓石)을 세웠다. 영풍군은 박팽년(朴彭年)의 사위로 부인과 함께 절개를 세운 자이다. 좌의정(左議政) 채제공(蔡濟恭)에게 명하여 차천로(車天輅)의 문집(文集)을 수집하게 하였다. 북한산성(北漢山城)에 있던 경서(經書)를 성균관(成均館) 존경각(尊經閣)에서 인쇄하여 보관하게 하여 전적(典籍)으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였다. 준원전(濬源殿, 조선의 건국 연원을 기념한 전각) 동쪽 산기슭에 가죽나무로 만든 정자가 있는데, 태조(太祖)가 예전에 그 아래에 행차하셨던 적이 있었다. [왕께서 마땅히 존경하는 뜻을 표하는 도리가 있어야 하니, 지형에 따라] 석축(石砌, 돌계단)을 두르라 하셨다. 왕께서 정하신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가 완성되었다. 선조(宣祖)조의 곤봉(棍棒), 등패(藤牌), 낭선(狼筅), 장창(長槍), 당파(鎲鈀), 쌍수도(雙手刀) 등 여섯 가지 기예와 장조(莊祖)가 정사를 대리하던 시기에 죽장창(竹長鎗), 기창(旗鎗), 예도(銳刀), 왜검(倭劍), 교전(交戰), 월협도(月挾刀), 쌍검(雙劍), 제독검(提督劍), 본국검(本國劍), 권법(拳法), 편(鞭), 곤(棍) 등 12가지 기예를 더 넣어 18가지 기예의 이름이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기창(騎槍), 월도(月刀), 쌍검(雙劍), 편곤(鞭棍), 격구(擊毬), 원기(猿騎) 등 6가지 기예를 더 넣으니 모두 24가지 기예가 되었다. 왕께서 잠을 주무시는 방에 이름을 붙여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이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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