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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15년(1791)

다음 해(1791)에 영월(寧越)에 있는 백성들의 집이 불에 탔는데, 자규루(子規樓)【단종(端宗)이 갔다가 ‘두견이 슬피 우는 달 밝은 밤에, 시름에 겨워 누각에 오르니, 네 울음 슬퍼서 내 듣기 괴로워라, 네 울음소리 없으면 내 시름도 없을 것을, 세상에 원통하고 괴로운 이들에게 말하노니, 진실로 봄 3월에는 자규루에 오르지 마시오.’라는 단구(短句)를 지어 읊으셨던 곳】 옛터가 나왔다. 왕께서 [그 터에 자규루를] 다시 세우라 명하셨다. 금성군(錦城君)과 화의군(和義君)【모두 세조(世祖)의 아우】 등 육종영(六宗英)1)안평 대군(安平大君), 금성 대군(錦城大君), 화의군(和義君) 이영(李瓔), 한남군(漢南君) 이어(李棜), 영풍군(永豊君) 이천(李瑔),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이양(李穰) 등 여섯 종실과 그 밖의 사육신(死六臣)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을 창절사(彰節祠)에 추향(追享)하였다. 나이가 100세가 된 문의현(文義縣) 사람 지중추(知中樞) 신의청(申義淸)에게 특별히 도총관(都摠管)을 제수하셨다. 선조(宣祖)께서 ‘해바라기가 해를 향하여 기우는 데는 방지(旁枝)를 따지지 않는 것인데, [신하가 충성을 바치는 것이 어찌 반드시 정적(正嫡)에게만 해당하겠는가?]’라고 하신 가르침을 추모(追慕)하셔서 서자들에게도 벼슬길을 열어 주겠다는 교지(敎旨)를 내리셨다. 장용영(壯勇營)을 설치하였다. 천주교인 윤지충(尹持忠)이 신주(神主)를 불태우고, 권상연(權尙然)이 부친의 시신을 버리자 채제공(蔡濟恭)이 차자를 올렸다. 채제공의 차자에 따라 사학(邪學)을 금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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